충청남도 서천 출신. 1906년 민종식의진(閔宗植義陣)에 들어가 연락책임자가 되어 항일의병투쟁을 벌였다. 특히, 이 해 5월 민종식의진이 충청남도 홍주를 13일간 점령하고 일본군 및 진위대와 격전을 벌인 홍주성전투에 참전하였다.
그러나 홍주성전투에서 부대가 패퇴하자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다가, 1910년 의병투쟁을 재개하여 조선독립군사령부 결사대조직책임자인 한훈(韓焄, 일명 禹錫)과 같이 활동하였다.
1927년 11월 8일 군자금 모금을 위하여 한훈·한태석(韓泰錫)과 함께 대전군에 거주하는 정순학(鄭淳學)의 집에 들어갔다가 일본경찰에 잡혀, 1929년 12월 전주지방법원 판결을 거쳐 1930년 3월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독립유공자공훈록』(1990)에 따르면 같은 고향에 거주하는 한우석(韓禹錫)·태석(泰錫) 형제와 함께 1929년 11월 군자금 모집을 위하여 대전군(大田郡) 기성면(杞城面) 용촌리(龍村里)에 거주하는 정순학(鄭淳學)의 집에 잠입하였다가 붙잡혔다고 전한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