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개항기 때, 제학, 판의금부사, 판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훈련원정과 성천부사를 지냈는데, 1857년 평안남도암행어사는 윤병정에게 죄줄 것을 요청하였다. 1861년 성균관대사성에 임명되었고, 1862년(고종 1) 이조참의·대사간·1865년 승지 등을 지내며 안동김씨 세력에 반대되는 태도를 취하였다.
1873년(고종 10) 강원도관찰사로 임명되어 3년을 재임한 뒤 다시 대사간·한성부판윤을 지냈다. 공조판서로 문과초시의 시관(試官)이 되었으나 과폐(科弊)로 인하여 숙천부에 유배의 명을 받았다가 한달 뒤 석방되었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낙향하였다.
노모봉양을 이유로 조정의 상경독촉을 피하였고, 동시에 호포(戶布)의 혁파, 서원의 복설과 같은 대원군정책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의견도 상소하였다. 이듬해 가을에 예조판서에 임명된 뒤 이조판서·제학·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하였고, 마지막으로 판돈녕부사를 지냈다. 저서로는 『파강유고(巴江遺稿)』가 있다. 시호는 효문(孝文)이다.
참고문헌
- 『철종실록(哲宗實錄)』
- 『고종실록(高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조선후기성리학』(유명종, 이문출판사, 1985)
- 『한국성씨대관』(최덕교, 창조사, 1978)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