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은필(殷弼). 판중추부사 윤자승(尹滋承)의 아들로, 어머니는 나주임씨(羅州林氏) 임기수(林驥洙)의 딸이다.
직부전시(直赴殿試)의 특혜를 받아 1877년(고종 14)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임오군란 다음해인 1883년 부응교로서 대원군의 오른팔인 이회정(李會正)·임응준(任應準)을 군란 관련자로 극형할 것을 연명상소하였다. 그리고 세계일주에서 돌아온 민영익(閔泳翊)이 주장하여 만들어진 서양식 공사복변제(公私服變制)에 대한 반대가 전국적으로 일어났을 때 집의로서 그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1889년 좌부승지가 되어 소론의 입장에서 송시열(宋時烈)을 비난한 한용석(韓容奭)의 처벌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으며, 1891년 대사간으로서 민비일파가 획책한 세자의 실질적인 대리청정에 반대한 이용원(李容元)을 극형에 처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와같이, 민씨정권의 인물로서 처신하고, 판중추부사 윤자승(尹滋承)인 아버지가 유력하였지만, 1894년 1월 이조참의를 마지막으로 등용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