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율 관산리 고인돌 ( 고인돌)

목차
관련 정보
황해 은율 운산리 지석묘 원경
황해 은율 운산리 지석묘 원경
선사문화
유적
북한 황해남도 은율군에 있는 청동기시대 북방식 고인돌. 지석묘.
이칭
이칭
운산리(雲山里)고인돌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북한 황해남도 은율군에 있는 청동기시대 북방식 고인돌. 지석묘.
내용

우리나라 최대의 고인돌 중 하나이다.

은율읍에서 동북쪽으로 8㎞를 가면 관산리 소재 마을에 이르고, 마을 앞 높이 80㎝ 가량의 산마루에 2기의 고인돌이 우뚝 솟아 있다. 의연하고 반듯한 위용때문에 일찍부터 사진을 통해 널리 소개되었다. 흔히 ‘운산리(雲山里)고인돌’로 알려져 있지만, 행정구역상으로는 관산리에 속한다. 1916년 일본인 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藏]가 조사하였다.

동쪽과 북쪽은 구월산의 작은 줄기들로 첩첩이 막혀 있지만, 서쪽은 서해가 바라다 보이는 전망좋은 두 언덕의 정상부에 각 1기씩의 대형 고인돌이 남북으로 서로 마주 바라보고 있다. 남쪽의 정상부에는 주위보다 약간 도드라지게 사방 3.5m, 높이 65㎝의 토단(土壇)이 이루어지고 그 위에 제1호 고인돌이 자리 잡고 있다.

서쪽의 마구리돌만 밖으로 넘어져 있을 뿐 거의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동쪽 마구리돌을 긴 벽의 바깥쪽에 덧세워 평면은 위아래로 긴 Ⅱ자모양을 이루고 있는 점이다. 지금까지 조사된 통식의 다른 북방식 고인돌에서 마구리돌이 긴 벽의 사이에 맞물려 들어간 것과는 상반된 모습으로, 이와 유사한 구조는 중국 동북지방의 고인돌에서 살필 수 있다.

관산리 1호 고인돌의 덮개돌 크기는 길이 875㎝, 너비 450㎝, 두께 31㎝로서 긴축은 동북동-서남서로 이루어져 있다. 그 아래에 이루어진 돌방의 크기는 길이 330㎝, 너비 140㎝, 높이 215㎝로서 모두 화강석으로 만들어졌다. 돌방을 이룬 굄돌들은 모두 안쪽으로 약간씩 기울게 세워져 돌방의 단면은 사다리꼴을 이루었다. 바닥에는 아무런 시설도 갖추어지지 않은 맨바닥 그대로이다. 굄돌은 바닥에서부터 66㎝까지 깊숙이 묻혀 있었다.

참고문헌

「우리나라 서북지방 고인돌에 관한 연구」(석광준, 『고고민속론문집』, 1979)
『滿鮮原始墳墓의 硏究』(三上次男, 吉川弘文館, 1961)
『大正五年度古蹟調査報告』(鳥居龍藏, 朝鮮總督府, 1917)
집필자
지건길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