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는 유점사(楡岾寺)의 말사이었다. 신라 835년(흥덕왕 10)에 와룡조사(臥龍祖師)가 창건하여 발풍사(勃楓寺)라고 하였고, 921년(태조 4)에는 왕명으로 와룡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그 지방의 세공(稅貢)을 이 절에 바치도록 하고 절 이름을 용공사(龍貢寺)로 고쳤으며, 989년(성종 8) 제관도인(諦官道人)에게 명하여 중수하였다.
1645년(인조 23)에 화재로 소실되자 지참(智參) 등이 중창하였고, 1710년(숙종 36)에 또 다시 소실되자 묘정(妙淨) · 민동(敏洞) 등이 중건하였으며, 1718년에 다시 산불로 소실되었으므로 청계(淸溪) 등이 동쪽으로 10리쯤 되는 곳에 절을 옮겨 중창하였다. 그리고 영월(永月) · 만월(滿月) · 청파(靑坡) 등은 옛 절터에 암자를 짓고, 용흥암(龍興庵)이라고 하였다. 1876년(고종 13)에는 도적이 방화하여 절을 태웠으나 수봉(秀峰) · 제하(霽霞) 등이 다시 중건하여, 은적사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