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역에 대한 조사는 관개수로 및 저수지 건설공사로 인해 1959년 6월 이루어졌다. 유적은 비행산 서쪽 구릉지 일대에 위치하는데, 여기에서 1957년과 1958년의 홍수와 산사태로 인한 주변에 흩어진 유물들을 인근 중학교 학생들이 지표채집해 학교에 진열해두었다.
유물 산포지의 면적은 약 2,000㎡에 이른다. 여기에서 채집된 유물로는 많은 토기편과 함께 활촉·도끼·끌·대팻날·반달칼·돌돈[石貨] 등의 석제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활촉은 편암제(片岩製)로서 3점이 수집되었다. 모두 유경식(有莖式)에 속하는데 그 중 2점은 단면이 마름모꼴로서 미늘[逆刺]이 달린 것이고, 1점은 단면 편육각형으로 날에서 슴베에 이르며 밋밋하게 좁혀진 것이다. 미늘이 이루어진 완형 1점의 크기는 길이 11㎝, 너비 1.7㎝, 두께 0.7㎝이다.
도끼는 10여 점이 수집되었는데 모두 섬록암(閃綠巖)계통의 굳은 석재로 만들어졌다. 형태는 길거나 짧은 두 종류의 도끼들로서 긴 것들은 대가리와 날부분이 약간 좁혀지며 다소 배부른 모습이고 짧은 것들은 횡단면의 모를 죽인 네모난 것들이다.
끌도 섬록암제로서 1점이 발견되었는데 전면을 곱게 갈아 만든 것이다. 배가 약간 부른 모습이며 날은 자귓날[單刃]을 이루었다. 길이 11㎝이다.
2점의 대팻날은 점판암 계통의 석재로 전면을 곱게 갈아 만들었다. 등이 약간 부른 납작한 모양이고 자귓날을 갖추었다. 길이 7㎝ 가량이다.
4점의 반달칼 가운데 1점은 편암제로서 날부분만 갈린 것이고 나머지는 편암계통으로 전면을 곱게 갈았다. 모두 등이 곧고 날은 둥근[直背彎刃] 형태이며 자귓날을 이루었다. 몸체의 중앙에 양쪽에서 맞뚫은 한개의 구멍이 나 있다.
돌돈은 2점이 나왔는데 하나는 반제품이고 다른 하나는 3분의 1 정도가 깨져 있다. 석재는 둘 다 회색의 편암제이며 둥근 모양에 가운데 구멍이 하나씩 뚫려 있다. 지름 50㎝, 두께 3㎝, 구멍의 지름은 약 7㎝이다.
토기편들은 모두 무늬가 없는 팽이그릇류[角形土器類]에 속하는 것들이다. 점토질의 바탕흙에는 쌀알 크기의 굵은 모래가 섞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