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대리 고분 ( )

선사문화
유적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에 있는 5세기 중반에서 6세기 초반의 의성 재지 지배층 무덤군.
이칭
이칭
의성대리리고분군
유적/고인돌·고분·능묘
양식
무덤군
건립 시기
삼국시대
관련 국가
신라
소재지
경상북도 의성군
내용 요약

의성대리고분(義城大里古墳)은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에 있는 5세기 중반에서 6세기 초반의 의성 재지 지배층 무덤군이다. 의성대리고분은 대체로 5세기 중반에서 6세기 초반에 조영된 집단 묘역으로 초기에는 돌돌림덧널무덤과 덧널무덤이 주류를 이루지만 주변에 돌덧널무덤이 축조되며 중기로 갈수록 돌돌림덧널무덤이, 그리고 후기에는 굴식돌방무덤으로 변한다. 출토 유물 중 금공품은 금귀걸이 등 일부에서 약간의 고구려적 요소가 있기는 하나, 거의 경주의 대형 돌무지덧널무덤에서 출토된 위세품과 계보를 같이한다.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에 있는 5세기 중반에서 6세기 초반의 의성 재지 지배층 무덤군.
발굴경위 및 결과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351번지에 자리한다. 금성면의 진산(鎭山)인 금성산에서 서쪽으로 길게 뻗은 능선의 말단부인 해발 112.2m인 구릉 능선부와 해발 106.5m인 구릉부, 그 사이의 계곡부 등 3구역으로 나누어져 약 49여 기의 고분이 조영되어 있다.

1965년 경희대학교 사학과에서 5호분, 1994년에 경북대학교박물관이 3호분, 2009년에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이 2호분 · 23호분, 2014년에 성림문화재연구원이 대형 봉토분 4기를 비롯하여 돌무지덧널무덤, 돌돌림덧널무덤, 돌덧널무덤 60여 기, 2015년에 45호분, 2020년에 44호분을 발굴 조사하였다.

현재는 발굴 조사된 고분군이 자리한 대리리를 비롯하여 탑리리 · 학미리의 고분군과 함께 2021년에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형태와 특징

5호분의 크기는 직경이 동서 20m, 남북 21m이고, 높이는 북쪽에서 2.5m, 남쪽에서 4m이다. 봉토 내에 제Ⅰ곽은 돌무지덧널무덤 · 돌돌림덧널무덤이고, 제Ⅱ곽은 나무널무덤이다. 주곽인 제Ⅰ곽은 동서로 긴 축을 둔 장방형으로, 봉토가 ‘U’자 모양으로 함몰되어 있다. 돌돌림 부분은 길이 4.97m, 너비 1.84m, 두께 0.8m이다. 제Ⅱ곽은 긴 축 방향이 동서이며, 크기는 북벽 길이 2.40m, 남벽 길이 3.20m, 너비는 중앙에서 1.25m이다.

출토 유물은 금으로 된 가는고리귀걸이 · 은으로 된 허리띠장식 · 은으로 된 띠고리 · 고리자루큰칼 · 쇠투겁창 · 쇠화살촉 등 금공품 및 철기류와 긴목항아리 · 짧은목항아리 · 토기잔 · 주1주2류가 출토되었다.

3호분의 분구(墳丘) 규모는 지름 13m, 높이 3m이고, 평면 형태는 동서로 긴 타원형이다. 조사 결과, Ⅰ곽은 긴 축 방향이 남북이고, 분구 바닥 부분에 자리하는 Ⅱ곽은 긴 축 방향이 동서로 배치되어 서로 직각을 이루며 교차한다. 그리고 Ⅰ곽은 외널식이고, Ⅱ곽은 으뜸덧널과 딸린덧널이 나란하게 ‘11’자 모양으로 배치된 구조이다.

Ⅰ곽은 돌무지덧널무덤 · 돌돌림덧널무덤으로 분구의 서쪽에 자리하며, Ⅱ곽의 분구 상부를 굴착하여 축조하였다. 긴 축 방향은 동북이고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다. 1곽의 규모는 길이 315㎝, 너비 150㎝이다. 유구의 중앙부에는 2인의 피장자 중 동쪽은 치아, 다리뼈 일부와 금으로 된 굵은고리귀걸이 · 유리로 된 목걸이를 착장하였고, 서쪽 피장자는 다리뼈 일부와 금으로 된 굵은고리귀걸이를 착장하였다.

Ⅱ곽의 으뜸덧널은 반지하식의 돌돌림덧널무덤으로 덧널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며, 긴 축 방향은 동북이다. 딸린덧널은 덧널 긴 벽의 남쪽 50㎝ 떨어진 곳에 축조되었다. 유물은 토기류 24점과 금동관 · 은허리띠 · 세잎무늬고리자루큰칼 · 철기류 14점이 출토되었다.

2호분은 직경 30m, 높이 6m의 원형 봉토분으로 봉분의 주인공은 두 명으로 이루어졌다. 봉토분 내에는 12기의 유구가 있었고 주변에 2기가 확인되었으며, 이 중 순장덧널은 3기이다. 선축된 A-1호의 매장 주체부는 동서 축인데 반하여 후축된 B-1호는 남북 축을 이루고 있다.

A-1호 으뜸덧널은 중앙에 안치된 사람의 뼈 2구와 유물들이 확인되었으며, 그 중 1구는 금동머리쓰개를 착장한 채 동쪽으로 향해 있으며, 서쪽을 향한 사람의 뼈는 착장 유물이 없어 순장자일 가능성이 높다.

B-1호 딸린덧널에서 사람 뼈 4구와 함께 다량의 토기류가 확인되었다. 순장자 4인은 성인 2인과 유아 2인이 매장되었는데 일가족으로 추정되며 이들은 주피장자와 혈연관계로 추정된다. 출토 유물은 금동관 · 굵은고리귀걸이 · 가는고리귀걸이 등 금공품과 재갈 등 철기류, 그리고 뚜껑있는굽다리접시 · 짧은목항아리 · 긴목항아리 등 도질토기류를 포함하여 900여 점이다.

44호와 45호분은 의성대리고분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능선의 말단부에 위치한다. 44호분은 으뜸덧널과 딸린덧널이 ‘11’ 자 모양으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으며, 봉분 외곽에 도랑을 갖춘 봉토분으로 직경은 약 20m이다.

으뜸덧널과 딸린덧널은 네 벽을 돌로 쌓은 형태로 추정되며, 부장덧널은 남쪽에 배치되어 있다. 덧널의 크기는 길이 4.9m, 너비 2.3m이다. 출토된 유물은 금으로 된 가는고리귀걸이 · 은으로 된 허리띠장식 등 금공품과 뚜껑있는 굽다리접시 · 짧은목항아리 · 긴목항아리 등 도질토기류 100여 점이 수습되었다.

45호분은 훼손이 심하여 봉분의 규모는 알 수 없지만, 매장 주체부는 ‘11’자 모양의 으뜸넛덜 · 딸린덧널식으로 넛덜은 돌무지덧널무덤 · 돌돌림덧널무덤, 딸린덧널은 굴식돌방무덤이다. 돌무지덧널무덤 · 돌돌림덧널무덤의 크기는 길이 2.7m, 너비 1.8m로 추정되며, 출토 유물은 금으로 된 가는고리귀걸이 · 은으로 된 허리띠장식 등 172점이 수습되었다. 특히 금귀걸이는 경주의 돌무지덧널무덤인 천마총(天馬塚)과 거의 동일한 형식이다.

2014년에 성림문화재연구원이 조사한 의성대리고분은 삼국시대 봉토분 4기를 비롯하여 돌무지덧널무덤 · 돌돌림덧널무덤, 돌덧널무덤, 돌방무덤 등 60여 기가 확인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금동관식(金銅冠飾) · 금동머리쓰개 · 금으로 된 가는고리귀걸이 및 굵은고리귀걸이 · 은허리띠장식 · 은띠고리 · 세잎무늬고리자루큰칼 · 꾸밈을 한 큰 칼 · 쇠투겁창 · 쇠화살촉 · 발걸이 · 말띠드리개 · 재갈 등 금공품 및 철기류와 긴목항아리 · 짧은목항아리 · 그릇받침 · 손잡이달린술잔 · 작은독 등 도질토기류를 비롯하여 약 2,670여 점이 수습되었다.

의의 및 평가

의성대리고분은 대체로 5세기 중반에서 6세기 초반에 조영된 집단 묘역이다. 초기에는 돌돌림덧널무덤과 덧널무덤이 주류를 이루지만 주변에 돌덧널무덤이 축조되며 중기로 갈수록 돌돌림덧널무덤이, 그리고 후기에는 굴식돌방무덤으로 변한다.

삼국시대 다른 지역과 달리 다양한 묘제가 공존하며, 특히 돌돌림덧널무덤의 구조는 경주의 돌돌림덧널무덤과 흡사하다. 출토 유물 중 금공품은 금귀걸이 등 일부에서 약간의 고구려적 요소가 있기는 하나, 거의 경주의 대형 돌무지덧널무덤에서 출토된 위세품(威勢品)과 계보를 같이한다.

그러나 도질토기류는 의성 재지 지역의 집단이 제작한 신라양식토기이지만, 의성 지역 고유의 특성이 드러나는 의성양식토기이다. 이 양식의 토기군은 주변 안동, 예천, 상주 등에서 출토되며, 멀리는 소백산 넘어 충북 지역에도 분포한다. 결론적으로 의성대리고분은 신라의 간접 지배 방식에 의한 의성 재지 세력 지배층의 무덤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의성 대리리 44군』(성림문화재연구원, 2020)
『의성 대리리 고분군』(성림문화재연구원, 2016)
『의성 대리리 45호분』(성림문화재연구원, 2015)
『의성 대리리 2호분』(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2012)
『의성 대리리 3호분』(경북대학교박물관, 2006)
주석
주1

접시에 높은 굽을 붙인, 고대 식기의 하나. 동남아시아에서는 이른 시기부터 사용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김해ㆍ경주 등지에서 많이 발굴된다.    우리말샘

주2

진흙으로 만든 그릇. 환원(還元) 상태에서 구운, 치밀하고 단단한 질그릇으로 회색 또는 검은색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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