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의성탑리고분(義城塔里古墳)은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탑리리에 있는, 피장자가 조문국의 후예이자 최고 수장층 일원으로 추정되는 무덤이다. 대리리 · 학미리 고분군과 함께 2021년에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이곳의 발굴 조사를 통하여 삼국시대 의성 지역의 정치 · 사회 · 문화적인 성격이 일부 파악되었다. 도질토기류는 신라토기양식 수용 후 의성양식토기로 변화하여 이후 안동, 예천, 상주, 소백산맥 이북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5세기 대 의성은 신라의 변방이면서도 요충으로 역할을 하였지만, 고구려와의 관계도 밀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탑리리에 있는, 피장자가 조문국의 후예이자 최고 수장층 일원으로 추정되는 무덤.
발굴경위 및 결과
고분이 자리한 주변은 동남쪽에 위치한 금성면의 진산(鎭山)인 금성산에 금성산성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서쪽 기슭에 자리한 탑리리마을에는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오층모전석탑(五層模塼石塔)이 있다.
금성산 고분군이 조영된 탑리리 · 대리리 · 학미리 일대는 원삼국시대의 소국인 조문국(召文國)의 고지로 알려져 있다. 발굴된 고분은 금성산의 기슭에서부터 서북쪽으로 뻗은 낮은 산줄기가 탑리리 북동쪽 약 2㎞ 지점에서 동서로 길게 뻗은 해발 160m에 자리하고 북서쪽으로 이어진 능선상에도 다수 분포되어 있다.
형태와 특징
고분은 먼저 으뜸덧널을 설치하고 추가장(追加葬)을 하면서 북쪽 둘레돌을 걷어내었다. 여기에 동서 긴 축의 목곽을 ‘T’자 모양으로 3기의 돌덧널을 추가로 축조하였다. 즉 매장 주체부의 형태는 타원형의 분구에 1기의 돌무지덧널무덤 · 돌돌림덧널무덤과 3기의 돌덧널무덤, 1기의 앞트기식돌방무덤이 조영된 오래된 복합무덤이다.
제Ⅰ곽인 앞트기식돌방무덤은 분구의 중앙 밑에 자리하고, 평면은 남북으로 긴 장방형으로 길이 약 3.5m, 너비 1.7m, 높이 약 1.8m이다. 당시 발굴 조사자는 천장 부분에 뚜껑돌이 없고 네 벽을 돌멩이로 쌓았으며 동서 긴 벽과 북쪽 짧은 벽이 수직이고 남쪽 짧은 벽은 바깥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주인공을 매장 후에 외부에서 막은 앞트기 부분으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이 묘제는 전형적인 돌돌림덧널무덤 형식이고 긴 벽 쪽에 딸린덧널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매장 주체부는 금동관을 착용한 사람 뼈는 남자이고, 북벽의 두개골은 여성인 순장자(旬葬者)로 판단하였다.
석곽묘인 제Ⅱ · Ⅲ · Ⅳ곽 중 제Ⅱ곽은 동서가 긴 장방형으로 크기는 길이 3.9m, 너비 1.5m, 높이 1.5m이다.
제Ⅲ곽은 길이 3.5m, 너비 약 1.5m, 높이는 중앙에서 약 90㎝이고, 네 벽은 갈색 혈암(頁巖)으로 불규칙하게 2∼3단 쌓아서 축조하였으며, 천정은 나무 뚜껑을 덮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쪽 피장자는 금동나비모양관식 · 청색유리목걸이 · 금귀걸이 · 금동허리띠 · 고리자루큰칼을 착용하였으나, 서쪽 피장자는 착장 유물이 소략하고 여성일 가능성이 있다.
제Ⅳ곽은 동북쪽으로 긴 장방형이고 길이 3.3m, 너비 1.3m, 높이 약 60㎝이다. 크고 작은 돌을 포개어 불규칙하게 쌓아서 네 벽을 축조하고 천장에는 나무 뚜껑을 덮은 것으로 추정된다.
제Ⅴ곽은 돌무지덧널무덤 · 돌돌림덧널무덤으로 덧널을 안치한 중앙 부분은 썩어 없어져 장방형으로 함몰되어 있고, 흘러내린 돌돌림 상태는 냇돌과 자갈로 둘러싸듯 놓여 있다.
출토된 유물은 Ⅰ곽과 Ⅲ곽의 껴묻거리가 우월하다. 우모형입식(羽毛形立飾)의 금동관 · 금동제관식 · 금귀걸이 · 금드리개 · 은허리띠 · 금동신발 등 화려한 장신구와 각종 철제 무기류, 마구류, 토기류가 출토되었다.
의의 및 평가
그리고 제Ⅰ곽에서 출토된 우모형입식의 금동관은 띠 모양의 테두리 위에 가장자리를 가늘게 자른 후 이를 꼬아서 새의 깃털 모양으로 입식을 세 개 부착하였다. 이러한 형태의 관은 경주의 신라 황남대총(皇南大塚) 남분에서 출토된 은제관식과 비슷하고, 고구려 수도였던 집안(集安)에서 출토되었다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과 매우 흡사한 양식이다.
이러한 결과는 5세기 대 의성은 신라의 변방이면서도 요충으로 역할을 하였지만, 고구려와의 관계도 밀접하였음을 대리리에서 출토된 금동제관장식 유물과 함께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또한 이 고분의 피장자는 조문국의 후예로서 최고 수장층(首長層)의 일원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단행본
- 金載元, 尹武炳, 『義城塔里古墳』(國立博物館古蹟調査報告 第三冊, 乙西文化社, 1962)
논문
- 박광열, 「의성양식토기」(『한국고분 전문사전(유물편)』, 2019)
- 조효식, 「의성 탑리리 고분」(『한국고분 전문사전(고분편)』, 2014)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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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능이나 묘의 둘레에 돌려 쌓은 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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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널을 넣기 위해 따로 짜 맞춘 매장 시설. 일반적으로 나무로 만들어진 것을 말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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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한 집단의 지배층 계급에 속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사람의 뒤를 따라 강제로 또는 자진하여 산 채로 함께 묻힌 사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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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지면을 깊게 파고 자갈 따위의 석재(石材)로 덧널을 만든 무덤. 삼국 시대에 사용했으며 널길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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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점토(粘土)가 굳어져 이루어진 수성암(水成巖). 회색이나 검은 갈색을 띠며, 흔히 얇은 층(層)으로 되어 잘 벗겨지는 성질이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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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장사 지낼 때, 시체와 함께 묻는 물건을 통틀어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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