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음서(蔭敍)로 관계에 진출, 1883년(고종 20) 일본인과 공동명의로 경상남도 창원의 금광채취허가를 받았으나 갑신정변으로 폐기되었다. 또한, 장기·경주에서도 채광하였다.
1885년에는 광무사(鑛務司)에서 삭주·벽동의 금광을 채광하였는데 사용(司勇)인 이건영으로 하여금 전적으로 관장하도록 하였다. 1895년에 군무아문주사가 되었다가 부위(副尉)로 군부 군무국 마정과원(馬政課員)·일등군사(一等軍司)·경리국과원을 지냈다. 1898년에는 담양군수로 임명되었으나 의원면직되었다.
법무회계국장·탁지부회계국장·군부경리국장·탁지부사세국장·중앙은행창설사무위원(中央銀行創設事務委員)·토지소관법기초위원·전기철도사무사판위원 등 정령(正領)까지 진급한 군인으로서 재정방면에 임용되었다. 1907년에는 충청남도관찰사가 되었고, 곧 중추원찬의에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