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휴휴당(休休堂) 또는 휴옹(休翁). 1825년(순조 25) 9월에 그린 「포도도(葡萄圖)」 병풍에 “내가 낙상으로 인하여 오른팔이 부러진지 1년이 지났는데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으니 종신토록 이러할 모양이다.”라고 하면서 “이제 종이 8폭을 구하여 쓰라림을 참으며 붓을 놀려 휴옹의 솜씨를 다시 인식하게 하는 바이다.”라고 제문(題文)을 적었던 점으로 보아 72세 때까지 생존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일찍이 이조판서를 지낸 홍식(洪湜)에게서 그림을 배웠다고 하는데, 현존하는 작품들을 보면 포도그림을 잘 그려 일가를 이루었던 듯하다. 그의 포도그림들은 대체로 황집중(黃執中)이 이룩하였던 조선 중기 포도화의 전통에 토대를 두고 있으면서도 그보다 좀더 번잡한 느낌을 주고 있다.
짙은 먹으로 납작하게 처리된 줄기와 옅은 먹의 덩굴들, 그리고 농도를 달리하며 묘사된 포도알과 부채같이 평면으로 퍼진 채 화면을 촘촘히 덮고 있는 잎의 모습들은 그의 작품에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같은 시대의 이우(李瑀) · 홍수주(洪壽疇)의 포도화법과 더불어 조선 후기의 최석환(崔奭煥) 등에게 계승되었다. 유작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월야포도도(月夜葡萄圖)」와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포도도」 등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