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선익(善翼), 호는 송부(松阜). 서울 출생.
1869년 부총관, 1877년 경기도 수군절도사, 1879년 충청도 병마절도사, 1883년 좌변포도대장으로 임명되었다. 1885년과 1889년 한성부 판윤으로 발령 받았다. 1892년 우변포도대장, 1894년 형조판서, 1896년 강원도 관찰사 겸 재판소 판사로 임명되었다. 1896년과 1898년 중추원 의관으로 발령 받았고, 1907년까지 여러 차례 궁내부 특진관을 지냈다. 1901년 대한제국 정부로부터 훈4등 팔괘장을 받았고, 헌병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1902년 경무사·육군참장·임시위생원감독으로 발령을 받았고, 호위대총관 사무를 대행하였다. 1903년 원수부(元帥府)의 회계국·군무국 총장, 육군부장·군부대신·의정부찬정으로 임명되었고, 1904년 원수부 검사국 총장이 되었다. 1906년 대한제국 정부로부터 훈2등 태극장을 받았고, 판돈녕사사로 임명되었다. 1907년 군대해산으로 육군부장에서 해임되었으며, 1908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후원하는 친일 유교단체 대동학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10년 10월 일본 정부로부터 한일합병 공로로 남작 작위를 받았고, 1911년 1월 2만 5천원의 은사공채를 수령했으며, 1912년 8월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다.
1915년 일제가 식민통치의 성과를 선전하는 ‘시정 5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 경성협찬회’의 특별회원을 맡았고, 이 해 11월 다이쇼대례기념장을 받았다. 1919년 3월 이봉의가 사망하자 4월 아들 이기원(李起元)이 작위를 물려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