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계천(季泉), 호는 육송(六松). 이안인(李安訒)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원주목사 이잠(李梣)이다. 아버지는 진위현령 이관하(李觀夏)이며, 어머니는 우의정 이행원(李行遠)의 딸이다.
1673년(현종 14) 춘당대시(春塘臺試)에 병과로 급제하고 고창현감·지평·정언·헌납·사간·집의를 거쳐 1696년(숙종 22) 충청도관찰사와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710년에는 대사간, 이듬해 함경도관찰사를 지냈으며, 1713년에는 비국(備局)이 이선부의 건의로 북도 친기위(親騎衛) 개혁안을 제출하기도 하였다. 1714년 경기감사, 1716년 형조판서를 역임하였다.
기로소에 들어가 김창집(金昌集)·신임(申銋) 등과 같이 기영회(耆英會)에 참가하였다. 풍채와 위의(威儀)가 엄숙하고 정려(整厲)하였으며 술을 좋아하는 호탕한 성품이었다. 1696년에는 숭음다패(崇飮多悖)하다 하여 장령 유신일(兪信一)의 탄핵으로 경상감사에서 파직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