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성우(成宇). 본적은 함경북도 경원이고, 노령(露領) 동부시베리아 우스문에서 출생하여 그곳과 중국 국경에서 성장하였다. 1918년 이종암(李鍾岩, 李鍾嚴, 梁健浩)·서상락(徐相洛)·강세우(姜世宇)와 함께 만주 통화현 합니하(通化縣 哈泥河)에 있는 신흥학교(新興學校)에 입학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지금은 배우기 보다는 실행할 때라며 동지들과 함께 학교를 자퇴하고, 길림(吉林)에 가서 같은해 11월 김원봉(金元鳳)·이종암·서상락·강세우·한봉근(韓鳳根)·곽재기(郭在驥)·신철휴(申喆休) 등과 같이 의열단을 조직하였다.
총독부고관 사살, 주요기관 폭파 등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김원봉과 함께 상해에 가서 폭탄 20여개와 권총, 탄환 약 100발을 구입하였다. 1920년 5월 곽재기·황상규(黃尙奎) 등과 같이 서울에 들어와 의열단의 1차의거대상인 밀양경찰서 폭파를 준비하던 중, 6월 이 계획을 탐지한 일본경찰에 잡혀 1921년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청진형무소로 이감되어 복역중인 1922년 8월 감방의 동료들과 탈옥을 하려다 실패하여 형이 2년 가산되었다. 1928년 3월 출옥하였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