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추보(樞甫), 호는 신천(新川). 아버지는 생원 이언(李彦)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전공을 세웠다. 1609년(광해군 1) 광해군 즉위를 경축하기 위하여 실시되었던 증광별시무과에 급제한 뒤, 고원군수로 나가 치적을 올렸다.
사람들의 무고로 파직되어 서울로 압송되었으나, 읍민이 풀어주기를 청하여 고원군수로 다시 등용되었다. 그런데 임지로 돌아가던 도중 문천에서, 유배소에서 죽은 이항복(李恒福)의 유해가 당도하였다는 말을 듣고 급히 달려가 분향한 것이 조정에 알려져 해직되었다. 그 뒤 관직에 오르지 못하였으며, 1634년(인조 12) 61세의 나이로 죽었다. 병조참판에 추증되었고, 고성의 위계서원(葦溪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