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군 둔포면 운교리(雲橋里) 출신. 1949년 6월 23일 옹진반도 동남방의 요지인 까치봉(385고지)의 후방지형에 구축된 적의 진지에 하사 소총병으로 특공 조원이 되어 수류탄을 투척, 적의 120미리 박격포 진지와 유개호(有蓋壕)를 파괴하고 전사하였다.
1949년 6월 23일 북한군 38경비대에 빼앗겼던 옹진반도의 까치봉을 치열한 공방전을 벌여 탈취하였으나 적의 저항은 완강히 계속되었다. 적의 진지는 아군과 같은 고지 후방 유리한 지형에 있어서 아군에게 박격포로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었다.
적의 강력한 화력을 제압하지 않는 한 어떠한 사태가 일어날 것인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따라서 국군 제1사단 12연대 2대대는 특공소대원 중에서 적진에 침투시킬 결사대원을 선발하였다. 이 때 특공조에 지원한 요원 가운데 하나가 이장복 하사였다. 특공조원이 된 이장복 하사는 소총 대신 10발의 수류탄으로 무장하였다.
아군에게 피해를 입히는 까치봉 후방의 적 박격포진지를 격파하고 278고지를 탈취하기 위해서였다. 포연(砲煙)이 자욱한 계곡을 돌아 까치봉 후방으로 침투한 결사대는 다시 적의 박격포 진지까지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적은 6문의 120미리 박격포를 여기 저기에 설치해 놓고 있었다. 이장복 하사는 동료 특공 대원들과 함께 적진지에 수류탄을 투척하였다.
목표했던 대로 적의 박격포진지를 모조리 파괴하였다. 이어 278고지를 향해서 행동을 개시했다. 7부 능선까지 무사히 도달한 이장복 하사와 결사대원들은 기관총 진지와 유개호 속에 수류탄을 던져 넣었다. 순간 진지와 유개호는 박살나고 말았다. 이장복 하사는 다시 8부 능선 일대에 구축되어 있는 적의 유개호도 파괴하였다.
이 때 전방 5, 6미터 지점에 잠복해 있던 북한군 여러 명이 불쑥 나타나 따발총을 난사하였다. 애석하게도 이장복 하사는 적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전사한 이장복 하사에게는 이등중사로 1계급 특진과 함께 무성을지무공훈장(無星乙支武功勳章)이 수여되었고, 1950년 12월 30일에는 화랑무공훈장이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