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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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
인물
조선 말기에서 대한제국기 제중원 주사, 한성판윤, 법규교정소의정관 등을 역임한 관료.
이칭
명오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61년 9월 17일
사망 연도
1900년
본관
광주(廣州)
출생지
경상북도 칠곡
주요 경력
병조참의|한성부관찰사|법규교정소의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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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이채연은 조선말기~대한제국기 제중원 주사, 한성판윤, 법규교정소의정관 등을 역임한 관료이다. 1887년(고종 24) 8월 주차 미국전권대신(駐箚 美國全權大臣) 박정양이 미국에 갈 때 번역관으로 수행하였다. 1896년에는 한성부 판윤에 임명되면서 도시 개조 사업과 전차 부설 사업 등의 도시 근대화 사업을 수행하였다.

정의
조선 말기에서 대한제국기 제중원 주사, 한성판윤, 법규교정소의정관 등을 역임한 관료.
인적 사항

이채연(李采淵)은 1861년 9월 17일에 칠곡에서 아버지 이이봉(李以鳳)과 어머니 김녕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광주이씨 좌통례공파(左通禮公派) 14대손으로, 자는 명오이다. 광주이씨 좌통례공파 영남 계열은 칠곡을 집성촌으로 하여 많은 급제자를 배출하였지만, 당시는 노론이 정국을 주도하던 때였으므로 관직에 나아가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지는 못하였다. 또한, 광주이씨 계열은 왕비를 배출하지 못하여 외척이 되는 일도 없었다.

주요 활동

이채연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계기는 제중원에서 일하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는 1886년 진사시에 입격하여 제중원 주사로 근무하였다. 그러면서 영어를 학습하고, 외아문에서 1년 정도 영어를 습득하였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1887년 미국 주재 전권대신의 파견을 앞두고 번역관으로 임명되었다. 이 당시 같이 미국으로 파견되었던 이하영(李夏榮)도 같은 제중원 주사로 있었던 것을 보면, 당시 제중원에서 호러스 알렌(Horace N. Allen)과 쌓은 친분은 이채연이 미국으로 파견되는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조선에서 미국으로 사절단을 파견하는 것에는 오언 데니(Owen N. Denny)의 역할이 컸다. 그는 처음에는 사절단 파견에 반대했지만, 청나라의 위안스카이〔袁世凱〕가 조선의 내정에 깊이 관여하는 것을 목격함에 따라 데니는 구미 각국과의 다변 외교를 통해 조선을 구제할 수 있다고 보고 파견안을 건의하였다. 조선에 호의적이었던 미국인 조지 포크(George C. Foulk) 또한 고종에게 주미사절단 파견을 건의하였다. 파견은 지연되다가 1887년 12월 10일 마침내 초대 주미조선공사단이 일본 나가사키〔長崎〕에서 출발하였다. 이채연도 이때 같이 동행하였다.

미국에 도착한 주미공사관원들은 각종 외교 행사에 참여하면서 미국의 여러 기관을 보고, 주미 각국 공사, 외교관, 미국 행정부 고위 관리, 클리블랜드 대통령 등을 만나면서 미국에 대한 여러 가지를 경험하였다. 이채연은 1888년 4월 21일에 일시 귀국하였다가, 다시 1889년 1월 21일 워싱턴으로 돌아갔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서리공사를 맡으면서(1890년 9월 2일~1893년 6월) 이계필(李啓弼)에게 미국 국무부에서 화폐 조사 과정의 시찰에 대한 비공식적 승인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1888년 1월 18일 박정양(朴定陽)이 임대 개설한 공사관 건물을 1891년 11월 28일에 단독으로 매입하였다.

이채연은 1896년부터 한성판윤을 역임하면서 한성 근대화에 많은 역할을 담당하였다. 예를 들어 그는 치도(治道) 사업을 벌이기도 하였고, 전차 부설 사업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가 하면, 한성 내 거주민들을 위한 위생사업, 교육사업 등의 복지사업도 활발하게 벌였다.

1898년 2월에는 한성부재판소수반판사(漢城府裁判所首班判事)를 겸임하였고, 귀족원경(貴族院卿), 양지아문부총재관(量地衙門副摠裁官) 등을 지냈다. 그 외 시종원경(侍從院卿)을 거쳐 1900년에는 법규교정소의정관(法規校正所議定官)에 임명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고종실록(高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廣州李氏大同譜』 권1
『순종실록(純宗實錄)』

논문

장경호, 「고종대 한성판윤 이채연의 정치성향과 활동」(『향토서울』 85호,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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