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구

  • 역사
  • 인물
  • 대한제국기
대한제국기 경무사, 중추원찬의, 경상북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관료.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장영민 (상지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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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한제국기 경무사, 중추원찬의, 경상북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관료.

생애 및 활동사항

미국 여자 예수교인인 샤트롱에게 우리말을 가르친 인연으로 서양인과 친밀하게 되어 각국 공사관에 출입하였다.

특히 러시아인들과 가까워 아관파천 후 김홍륙(金鴻陸)이 고종에게 러시아공사 웨베르 (Waeber, K.)의 추천이라고 속여 경무사(警務使)로 임명되었다고 하는데, 그 이전에 법부형사국장과 민사국장을 거쳤다.

1897년에는 독립협회의 위원으로 선출되기도 하였지만 단기간만 참여하였던 것 같다. 고종 앞에서도 언사가 패만하였고 공공연히 뇌물을 받는 것을 벌하려고 하여도 러시아공사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였다.

고종에게 패만하였던 김홍륙이 피습당한 사건이 일어나자, 고종은 이례적으로 경무사인 이충구에게 3일 이내에 범인을 체포할 것을 명하여 이를 이행하지 못하자 파면시켰다.

또, 김홍륙 등과 한로은행(韓露銀行) 설립을 추진하다가 독립협회의 반대로 중지하였으며, 춘생문사건(春生門事件)에도 깊이 관여하였다.

러시아공사가 을미사변의 설욕을 위해서는 정부요인을 제거하여야 한다고 사주하자, 안경수(安駉壽)에게 앞장을 서면 자신이 뒤를 밀겠다고 부추겼으며, 탄환 90개를 서양인으로부터 구하기도 하였다.

사건 당일 종묘쪽에서 사태를 관망하다가 패색이 짙어지자 귀가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체포되어 종신유배형을 받고 신지도(薪智島)에 유배되었다가 1906년에 석방되어 중추원찬의와 경상북도관찰사를 지냈다.

참고문헌

  • - 『고종실록(高宗實錄)』

  • - 『대한계년사(大韓季年史)』

  • - 『일본외교사료(日本外交史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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