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기인 1951년 12월 24일 해군 중령인 그는 제704함장으로서 동해안 봉쇄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귀항하던 중, 12월 26일 적의 기뢰에 의해 전사하였다.
이태영은 6·25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1949년 8월 16일부터 18일에 시행된 몽금포기습작전 기간에 해군 첩보대 팔학지구 파견대장으로 참가하여 북한군 5명이 탑승한 적선 1척을 나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전쟁 중이던 1951년 12월 24일 이태영 중령은 동해안 봉쇄작전을 위해 제704함을 이끌고 출동하라는 명령을 받고 부산항을 출발하였다. 제704함이 원산해역에 도착하자마자 해안기지에서 발사한 적의 격렬한 야포공격을 받았다.
이태영 함장은 승조원들에게 3인치, 20미리, 40미리 기관포 등의 전화력을 집중시켜 적의 진지를 강타하게 하여 적을 무력화시켰다.
다음날 12월 26일 이태영 중령은 북한군이 기뢰와 지뢰 등을 원산 외곽지역에 은폐해 두었다가 야간에 원산시내로 이동해 간다는 첩보를 입수하였다. 따라서 항해를 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풍랑이 심했으나, 지체 없이 적의 보급로를 공격할 수 있는 해안으로 접근해 갔다.
이 때 적은 야포진지에서 맹렬한 공격을 가해 왔다. 이태영 함장은 승조원들을 진두지휘하여 적진지를 공격하고 수송중이던 적의 보급품을 파괴하였다. 기뢰를 부설하려던 적의 기도도 사전에 봉쇄되었다. 아군 함정들이 안전하게 작전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임무를 완수한 이태영 함장은 칠흑 같은 어둠과 폭설, 풍랑에도 육안으로 항로를 개설하며 귀항을 시도하였다. 그러던 중 풍랑에 방향감을 잃어 적이 부설해 둔 기뢰원으로 접근하고 말았다. 이후 기뢰는 천지를 진동하는 폭음소리를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