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백형(伯衡). 총관(摠管) 이격(李格)의 아들이며, 경상좌수사 이학영(李鶴榮)의 아버지이다.
1846년(헌종 12) 경상좌도수군절도사·전라도병마절도사를 지냈으며, 1854년(철종 5) 삼도수군통제사·함경북도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다.
1865년(고종 2) 총융사가 되었고, 이듬해 어영대장과 공조판서로 있으면서 경복궁 중건을 감독하였다. 병인양요가 일어난 뒤 전국에 암행어사를 보내 주로 변방 방비를 사찰하도록 하였는데, 그 결과 통제사들의 죄가 드러나 중신인 이현직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특별히 임명하였다.
그러나 1869년 호포전(戶布錢)을 걷기 위하여 작성한 호적에 향리들의 부정이 있어 일어난 고성민란으로 파직되었다. 이듬해 형조판서·판의금부사를 거쳤고, 신미양요가 거의 끝나갈 때 한성부판윤에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