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직 ()

이홍직
이홍직
근대사
인물
해방 이후 『한국고문화논고』, 『국사대사전』, 『한국고대사의 연구』 등을 저술한 학자. 역사학자.
이칭
남운(南雲)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9년
사망 연도
1970년
본관
한산(韓山: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
출생지
경기도 이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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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한국고문화논고』, 『국사대사전』, 『한국고대사의 연구』 등을 저술한 학자. 역사학자.
개설

본관은 한산(韓山). 호는 남운(南雲). 경기도 이천 출신. 아버지는 이승대(李承大)로, 이승대의 맏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 부모를 따라 일본에 가서 소학교를 마쳤다. 1927년 동경부립제일중학교, 1931년 우라와고등학교[浦和高等學校]를 졸업하고, 1935년 동경제국대학 문학부 국사학과를 졸업, 문학사학위를 받았다.

1936년 귀국해 이왕직국조보감 찬집위원회 촉탁이 되었다. 그 뒤 1945년 광복이 되던 해까지 계속 이왕직에 재직하면서 연희전문학교명륜전문학교 강사로 출강하였다. 1945년 12월부터 1951년 3월까지 국립박물관 박물감 · 진열과장을 거쳤으며, 이 동안에도 여러 대학에 강사로 출강하였다. 1953년 연희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가 되었다.

1958년에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그 뒤 중앙도서관장 · 박물관장 등의 교내 보직을 역임하였다. 1969년 고려대학교에서 「삼국시대사의 문헌학적 연구」라는 논문으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교수직에 있으면서 사회 각 분야의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국보고적 · 명승 · 천연기념물보존회 제1부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고등고시위원, 학술원 인문과학부 제3분과회위원, 한일회담 대표, 문화재위원회(현, 문화유산위원회) 제1분과위원회위원장 등을 거쳤다.

광복 이후 여러 대학에서 후진을 양성하는 한편, 수준 높은 논문을 발표하여 우리나라의 역사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한국사 중에서 특히 깊은 관심으로 연구한 것은 한국의 고대사였다. 나아가 한국 고대사 연구와 관련 있는 고고학 · 민속학 · 미술사, 그리고 미개 사회와 동양의 고대 국가 등의 방면에서도 큰 학문적인 업적을 남겼다.

국내에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을 직접 찾아내고 보존하며, 일제에 빼앗긴 문화재(현, 국가유산)를 되찾기 위해 애쓰기도 하였다. 고고미술에 대한 애착과 연구 열의는 이홍직의 학문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몫이었다.

그러나 평소 고고학자나 미술사가가 아니라, 역사가로 대성하기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학문 활동의 중심을 한국 고대사에 두었다. 역사 연구의 한계성을 존중하고, 사료비판 문제에 큰 비중을 두면서 실증적인 역사 연구방법을 견지하였다.

이홍직의 역사연구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일본의 고대사료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다. 「일본서기 소재 고구려 관계 기사고」라는 장편의 논문을 통해 한국 고대사 연구에 일본 측의 사료를 활용하여 연구의 깊이를 더했다.

한편, 『삼국사기』 · 『삼국유사』 · 『고려사』 등 고전의 색인과 한국사 사전의 편찬에도 관심을 기울여 이 방면에서도 큰 업적을 거두었다. 또, 비교적 많은 수필도 남겼다. 이 수필들은 진지하면서도 소탈하고, 근엄하면서도 순진한 인간미를 보여주어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사랑을 받았다.

주요 역서로 『시베리아제민족의 원시종교(西伯利亞諸民族-原始宗敎)』(니오라제 저)가 있다. 대표적인 저서는 『한국고문화논고』 · 『삼국사기색인』(공동) · 『국사신강』(공저) · 『독사여적』 · 『고려사색인』(공동) · 『국사대사전(國史大事典)』 · 『한국고대사의 연구』 · 『한 사가(史家)의 유훈(流薰)』 등이다.

상훈과 추모

학술문화포장 · 서울특별시문화상 등을 받았다.

참고문헌

『한 사가의 유훈』(이홍직, 통문관, 1972)
『이홍직박사회갑기념한국사학논총』(신구문화사, 1969)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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