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민란

  • 역사
  • 사건
  • 조선 후기
1862년(철종 13)4월 9일 경상도 인동(지금의 칠곡군 인동면)에서 일어난 민란.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최진옥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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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862년(철종 13)4월 9일 경상도 인동(지금의 칠곡군 인동면)에서 일어난 민란.

내용

난의 원인은 선무사가 인동부사 이근석(李根奭)에게 문의한 바에 의하면 도결(都結) 때문이었다. 난민들은 읍폐의 해결방안으로 혁파조건 12조를 제시하고 부사에게 완문(完文)을 받아내었다.

처음에는 인동부 안의 북삼면(北三面)·약목면(若木面)·서면(西面)의 난민이 취회하였으며 10일 강을 넘어 인동읍에 이르렀을 때는 9개면에서 향응한 수천명이 가는 곳마다 재물을 부수고 집을 불지르고 하였다.

대동결부(大同結簿)와 거두어들인 결역전(結役錢) 132냥, 공목(公木) 16필도 불에 던져버리고 관가에 난입하였다. 11일까지 계속되는 동안 불타버린 가옥이 54호에 이르렀다. 난민들이 관가에 난입하였을 때 인리(人吏) 및 노령(奴令)들은 다 도망가고 부사 혼자서 변을 당하였다.

장현광(張顯光)의 후예인 인동장씨들이 관장을 공갈하여 완문을 받아내는 데 앞장섰다는 암행어사 임승준(任承準)의 별단에 의하여 전 정언 장응표(張膺杓)가 체포되어 삭직을 당하였다.

참고문헌

  • - 『철종실록(哲宗實錄)』

  •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 『임술록(壬戌錄)』

  • - 『종산집(鍾山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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