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6년(세조 12)에 세조가 고안, 제작한 것이다. 세조는 이듬해에 예문(藝文)의 유신(儒臣)들을 불러 이를 보였으나 그 기능을 알아내는 자가 하나도 없고, 다만 사예 유희익(兪希益)과 직강 김뉴(金紐)만이 그 대강의 이치를 이해하였다고 한다.
사회(司誨) 이륙(李陸)에 따르면 이 인지의는 구리를 부어서 만든 것인데, 둘레에 24방위를 나열하고 그 속을 비워서 구리기둥[銅柱]을 세우고 그 기둥에 가로구멍을 뚫어서 그 위에 동형(銅衡)을 꿰어놓고 그 동형을 상하로 움직이면서 측량하는 것이라 한다.
세조는 같은 해에 김뉴·유희익·이맹현(李孟賢)·이륙·이익배(李益培)·안효례(安孝禮) 등을 시켜 영릉(英陵)에 가서 인지의로 측량을 시험하게 하였다. 현재는 전하지 않아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