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요(㴭), 자는 용함(用涵), 호는 송계(松溪). 인조의 셋째아들이며 효종의 동생으로, 1628년 7세 때 인평대군(麟坪大君)에 봉해졌다.
1640년 볼모로 심양(瀋陽)에 갔다가 이듬해 돌아온 이후, 1650년부터 네 차례에 걸쳐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시서화(詩書畫)를 잘하였을 뿐 아니라 제자백가에도 정통하였던 그는, 1645년 소현세자(昭顯世子)를 따라 내조(來朝)하였다가 3년 뒤에 본국으로 돌아간 중국인 화가 맹영광(孟永光)과 가깝게 지내기도 하였다.
현존하는 그의 작품은 희귀한 편으로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산수도」, 홍성하(洪性夏) 소장의 「노승하관도(老僧遐觀圖)」, 정무묵(鄭武默) 소장의 「고백도(古栢圖)」 등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고백도」는 섬세하고 꼼꼼한 필치로 다루어져 있어 맹영광의 공필법(工筆法)과 상통하는 바 크며, 「산수도」의 다소 거치른 필치 등은 절파풍(浙派風)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 이외에 『송계집』·『연행록(燕行錄)』·『산행록(山行錄)』의 저서를 남겼다. 효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충경(忠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