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군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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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조선 후기 장교 · 군병 · 원역(員役)의 봉급이나 급료를 관장하였던 병조 소속의 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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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 장교 · 군병 · 원역(員役)의 봉급이나 급료를 관장하였던 병조 소속의 관서.
내용

금군(禁軍)·호련대(虎輦隊)·내취(內吹)의 보(保)가 내던 포(布)를 수납하여 장교를 비롯한 군병·원역(員役)의 봉급이나 급료를 조달하고 지급하는 일을 맡았다.

지급 주기는 매월, 춘추 2기, 1년에 3기, 또는 4기로 지급하는 것이 있었다. 1년에 한번 지급하는 것과 수시로 지급하는 것도 있었다. 이러한 색의 장부를 어린식례(魚鱗式例)라고 하였다.

일군색에서 관리하는 보인(保人)의 총수는 1만5227명으로, 1인당 무명 한 필씩을 징수하는데, 돈으로 내는 것도 허락되었다. 처음에는 두 필씩을 징수하였다. 그러나 1750년(영조 26)에 양역을 감하여 한 필로 함에 따라 부족분이 생기게 되었다. 이에 부족분은 균역청에서 대물(代物)로 일군색에 지급하게 하였다.

그런데 장교 · 군병 · 원역 가운데 급료를 백미로 받는 자가 있어서, 이들에게는 균역청에서 대물로 지급되는 무명의 가격만큼 균역청의 백미를 옮겨와서 지급하기도 하였다.

지출 내용을 보면, 매 월에는 주로 봉급이나 급료로 지출되고, 1년 4기의 경상 지출은 금군의 당상군관 · 교련관 · 원역 이하의 피복 자료용 무명이었다.

춘추 양기에는 금군의 장교와 별군직(別軍職) 복마군(卜馬軍)의 마초대(馬草代), 궁술고시의 지대(紙代), 관리를 포폄(褒貶)할 때 정례로 지급하는 비용, 장관시무시(長官視務時)의 등화비(燈火費) 등으로 지급되었다.

1년에 한 차례씩 장관 · 대장의 당번병이라고 할 수 있는 표하군(標下軍)의 세찬비, 예비금군의 봉급용 무명 등도 지출하였다.

또한, 수시로 각종 수리비, 궁술고시의 상품대, 국왕이 능에 거둥할 때의 건호궤비(乾犒饋費 : 군사를 호궤하는 데 음식 대신 돈을 주는 것.), 신임 장교의 피복비 등도 지출되었다. 그런데 이 때의 금액이나 시기는 일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일군색의 낭청(郎廳)은 매년 초에 지난해의 수입이나 지출을 회계하여 새해의 경비안(經費案)에 부전을 붙여 상주, 신청하였다.

이 밖에도 일군색에서는 부장이나 수문장을 추천할 때에도 관여하였다. 후보자의 명단이 정색(政色)에서 넘어오면, 이 명단을 정리하여 병조로 올리고, 병조판서가 도총부와 훈련원의 당상과 합동으로 고사하여 추천을 허가하였다.

참고문헌

『만기요람(萬機要覽)』
『대전회통(大典會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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