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백승(曺栢承: 1835~1893)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자는 자익(自益), 호는 임거(林渠)이다. 아버지 증 동몽교관(童蒙敎官) 조석현(曺錫玄)이고 어머니는 벽진 이씨 이덕준(李德俊)의 딸이다. 1884년(고종 21)에 선공감가감역관(繕工監假監役官)이 되어 관직에 나아갔다. 이후 해방아문군사마(海防衙門軍司馬), 내무부주사 등을 역임하고 외직으로 나가 의령현감, 청송부사 등을 지냈다. 이후 양주목사에 천망(薦望)되었는데 자급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어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양주목사에 임명되었다. 이후 부호군 등을 역임하였다. 사후에 조긍섭(曺兢燮)이 1911년에 묘갈명(墓碣銘)을 지었다. 문집 『임거일고(林渠逸稿)』 1권이 전한다.
3권 1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목활자로 간행되었다. 권두(卷頭)에 정만조(鄭萬朝)와 신도(申燾)의 서문이, 권말에 편자이자 저자의 조카인 조병선(曺秉善)의 발문이 실려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을 비롯하여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등 다수의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국역대문집총서(韓國歷代文集叢書) 1093책으로 영인 출간되었다.
저자의 사후 10여 년이 지나 저자의 문중에서 문집 편찬에 대한 논의가 발의되었고, 다시 20여 년이 지나 저자의 조카인 조병선이 주도하여 문집 편집 작업이 이루어졌다. 조병선은 저자의 유문(遺文)을 수집하고 편집하여 주1인 조봉환(曺鳳煥)에게 전달하였으나, 문집 간행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원고가 손상되었다. 이에 조병선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초고(草稿)를 다시 편집하고, 행장(行狀)과 묘지(墓誌)와 서발문 등을 여러 문인에게 요청하여 1932년에 활자로 간행하였다.
권1은 시로 61제(題) 69수(首)가 실려 있다. 시는 대체로 창작 연대순으로 배열되어 있어 저자의 삶의 궤적을 추적할 수 있다. 일상에서의 감회를 읊은 시 중에서 「복거(卜居)」는 1862년(철종 13)에 고향에 자신의 거처를 마련하고서 그 기쁨과 앞으로의 기대를 읊은 작품으로, 여러 명의 지인들이 이에 주2를 남겼다. 한편 여럿이 함께 지은 연구시(聯句詩), 다른 사람의 시 구절을 따와 지은 집구시(集句詩)가 다수 보이는 것도 특징이다. 전반적인 시풍은 정만조가 서문에서 언급하였듯 비탄하고 강개한 심리가 주된 분위기를 이루고 있으며, 자연에 모든 것을 맡기고 순리대로 살겠다는 저자의 의지가 표명되어 있다.
권2는 차대(箚對)로 차자 2편과 연대(筵對) 한 편이 수록되었는데, 차자(箚子)는 사직의 뜻을 표명한 작품들이고 연대는 1885년(고종 22)의 경연 자리에서 고종(高宗)과 주고 받은 대화를 모았다. 또한 서(書) 20편, 제문(祭文) 2편, 잡저(雜著) 4편이 수록되었다. 편지는 이규원(李奎遠), 김기석(金箕錫), 민정식(閔正植), 이경필(李敬必), 우성규(禹成圭) 등 다수의 문인 및 가족과 주고 받은 것들이 실려 있다. 제문은 모두 가족을 위해 지은 것들이고 잡저는 학문 태도를 논설한 「만취설(晩翠說)」 외에, 1884년(고종 21) 군사마로 있으면서 쓴 「군중고시(軍中告示)」와 같은 해 11월의 일기, 자식에게 가르침을 전한 「유계(遺誡)」 등이다.
권3은 부록으로, 여러 문인들이 저자를 위해 써준 시와 편지, 만사(輓詞), 제문, 행장 및 각종 묘도문자, 고유문 등이 차례로 수록되어 있다.
『임거일고』는 19세기 중후반을 살았던 조백승의 문집으로, 조선 말엽 문인 지식인의 삶과 의식 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서 의미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