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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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
인물
해방 이후 베트남에서 638고지(안케페스)전투에 참전한 군인.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49년
사망 연도
1972년
출생지
전라북도 김제군
관련 사건
베트남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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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베트남에서 638고지(안케페스)전투에 참전한 군인.
개설

전라북도 김제군(현,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부량면 금강리 138번지에서 태어났다. 1972년 4월 22일 베트남 638고지(안케페스) 전투에 중위로서 수도사단 1기갑연대 2중대 1소대장으로 참전하여 전사하였다.

1972년 4월 11일 ‘안케’계곡에서 맹호 기갑연대는 파월사상 최초로 월맹 정규군 제3사단 12연대와 치열한 공방전을 벌여 격파하여 19번 도로를 개통하였다.

안케계곡은 베트남을 남북으로 가르는 안남산맥의 지맥으로 해발 600미터 정도의 낮은 지세이나 산세가 매우 험준한 전략 요충지였다.

월맹군이 연대병력의 3분의 1이나 잃은 피해를 입으면서도 저항을 계속한 것은 중부 고원지대를 동, 서로 분단시키고 북부 DMZ 이남과 사이공 서북방에 침투한 적을 간접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1972년 4월 21일은 작전이 개시된 지 10일이 지났으나 2대대의 전투는 답보 상태에 있었다. 22일 08시에 드디어 2중대가 공격의 전면에 나섰다. 10시와 13시에 두 차례 공격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였다. 15시부터 개시된 3차 공격에는 ‘도람’작전이 전개되었다. 2명이 1개조가 되어 밀고 올라가는 원시적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안케계곡의 경사도와 나무뿌리, 돌부리 등으로 도람작전도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15시 10분의 4차 공격시에는 중대장은 소대장 위치에, 소대장은 분대장 위치에, 분대장은 제일 선두에서 공격하였다. 18시 15분경 드디어 1소대장이던 임동춘 중위가 적의 제1선 진지에 직접 수류탄을 투척하여 성공하였다.

그러나 임동춘 중위는 적 B-40 파편으로 다리에 부상을 입었다. 그래도 중위는 굴하지 않고 제2선을 향해 계속 돌진하였다. 이번에는 돌진중 적의 저격을 받아 소대원 4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이에 중위는 필사의 정신으로 공격의 선두에 서서 적진을 돌파하고 전사하였다. 전사 후 대위로 추서되었으며, 1972년 5월 3일에는 태극무공훈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파월한국전쟁사』 10(국방부,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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