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 중앙동 4가 28번지 출신. 한국전쟁 발발시 해군본부 정보국 특수공작대 중위로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는데 기여를 한 인물이다.
임병래 중위가 수행하였던 주요 임무는 특수공작이었다. 인민군의 병력배치와 그 규모·보급관계·지뢰매설 사항·상륙지점의 지형·암벽의 높이·기뢰수송 사항·인천해안포대의 위치·인천시내 주둔병력의 규모와 활동내용을 수집하는 것이었다.
한국전쟁이 치열하던 1950년 8월 22일 인천 앞바다의 영흥도에 상륙하여 잠입, 인천과 서울·수원 등의 사지(死地)를 왕래하였다. 첩보를 수집하여 해군본부와 맥아더 사령부에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임병래의 첩보수집활동은 인천상륙작전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었다.
이름하여 X-Ray작전이었다. 그러나 인천상륙작전을 하루 앞둔 1950년 9월 14일 임병래 중위는 영흥도에서 북한군 1개대대의 공격을 받아 포위되어 위기에 처하였다. 적에게 체포되어 특수공작임무의 기밀이 누설될 것을 우려하여 자결하였다. 1951년 충무무공훈장이, 1954년에는 을지무공훈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