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필사본. 필자는 승지(承旨)로 낙향했다가 동학농민군의 활동이 활발해지자 강릉부사로 임명된 이회원(李會源)일 수도 있지만, 그와 친밀했던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이회원의 저술인 동비토론(東匪討論)은 일지의 성격이 강하다. 반면, 임영토비소록은 그 책에서 주요한 사건과 과정을 초록하고 필자 자신의 생각을 약간 덧붙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 소장처는 그 후손이 거주하는 강릉 선교장(船橋莊)으로 동비토론, 동비토록(東匪討錄)과 함께 보관되고 있다.
이 책은 강원도, 특히 영동과 영서 남부 지방의 동학농민군과 보수적인 양반 민보(民堡)의 활동에 관한 기본적인 자료이다.
필자는 책의 서문에 해당하는 부분에 이단의 성행을 개탄하고, 동학을 요망한 술수이며 재물을 갈취하려는 방도로 규정하고 있다. 8월 말부터 강원도의 영월, 평창, 충청도의 제천과 청풍의 동학농민군이 대관령 일대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였다.
이에 강릉에서는 이회원을 중심으로 민보군이 결성되고, 9월 4일에는 동학농민군이 강릉부로 들어온 일련의 사태 전개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강릉부에 들어온 동학농민군의 신앙 행위, 다양한 사회적 출신, 삼정(三政) 폐단을 고쳐 보국안민(輔國安民)하겠다는 목표, 지휘자 등에 관해서 간단히 언급하였다.
이후 양반을 중심으로 한 지역 주민들이 강력하게 대응해서 동학농민군을 강릉 관아에서 축출하고, 11일에는 대회를 열어 수백 명의 군정(軍丁)을 확보해 방비를 강화한 경과를 적고 있다.
이렇게 주도적으로 사태를 수습했던 이회원이 강릉부사로 임명된 사실을 안 10월 1일로 강릉부에 관련된 기사를 마감하였다. 그 다음 부분부터는 강원도 정선, 평창 일대에서 전개된 동학농민군의 기포와 활동, 그리고 민보군의 대대적인 진압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동학농민군의 지도자 차기석(車箕錫)이 처음에는 수도만 하다가 9월 말에 이르러 대대적으로 기포한 일, 군정들이 보부상과 함께 출동해 동학농민군을 추적해 접전한 일, 횡성 내면 서석에서 동학농민군이 참패당하고 차기석 등이 잡혀 효수된 일 등을 썼다.
마지막 부분은 필자인 손님이 주인인 이회원의 공적을 높이는 대화 내용이며, 집필 일자가 1895년 9월임이 부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