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천 ()

목차
건축
인물
해방 이후 국립박물관 학예관 등을 역임한 관료. 고고미술사가, 동양화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8년
사망 연도
1965년
본관
옥야(沃野)
출생지
개성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해방 이후 국립박물관 학예관 등을 역임한 관료. 고고미술사가, 동양화가.
내용

개성 출생으로 본관은 옥야(沃野), 본명은 화봉(化鳳)이다. 만주 간도(間島)에서 연신중학교를 다니다가 일본에 건너가 1927년에 동경미술학교 동양화과에 입학해 2년간 수학하였다.

귀국 후 고고미술에 관심을 두어서 1933년 관음사 대웅전(觀音寺大雄殿)의 보수공사 때 채색화원(彩色畫員)으로 공사를 담당한 일을 비롯하여 성불사극락전(成佛寺極樂殿) · 평양 대동문(大同門) · 화엄사각황전(華嚴寺覺皇殿) · 개심사대웅전(開心寺大雄殿) 등의 보수공사에 채색조사원이 되었다.

광복 후 국립박물관에 소속되어 계속해서 문화재(현, 문화유산)의 복원 · 보수 · 실측 공사를 맡아 이 방면의 유일한 권위자로서 살아 있는 문화재라 일컬어졌다.

그동안 불국사대웅전 · 수원 팔달문 · 경복궁 · 진주 촉석루 · 보신각 · 남한산성 등 국보급 건축물 보수 및 중수공사를 맡아하였고, 국립박물관 학예관, 문화재보존위원회 제1분과위원 등을 지냈으며, 1962년 임천고건축설계사무소를 세워 후진을 양성하였다.

특히, 단청관계에 조예가 깊어 많은 모사작품을 남겼다. 모사작품으로는 진찬의도(進饌儀圖) 1폭을 비롯하여 산수도 등이 남아 있다.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