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출생으로 본관은 옥야(沃野), 본명은 화봉(化鳳)이다. 만주 간도(間島)에서 연신중학교를 다니다가 일본에 건너가 1927년에 동경미술학교 동양화과에 입학해 2년간 수학하였다.
귀국 후 고고미술에 관심을 두어서 1933년 관음사 대웅전(觀音寺大雄殿)의 보수공사 때 채색화원(彩色畫員)으로 공사를 담당한 일을 비롯하여 성불사극락전(成佛寺極樂殿) · 평양 대동문(大同門) · 화엄사각황전(華嚴寺覺皇殿) · 개심사대웅전(開心寺大雄殿) 등의 보수공사에 채색조사원이 되었다.
광복 후 국립박물관에 소속되어 계속해서 문화재(현, 문화유산)의 복원 · 보수 · 실측 공사를 맡아 이 방면의 유일한 권위자로서 살아 있는 문화재라 일컬어졌다.
그동안 불국사대웅전 · 수원 팔달문 · 경복궁 · 진주 촉석루 · 보신각 · 남한산성 등 국보급 건축물 보수 및 중수공사를 맡아하였고, 국립박물관 학예관, 문화재보존위원회 제1분과위원 등을 지냈으며, 1962년 임천고건축설계사무소를 세워 후진을 양성하였다.
특히, 단청관계에 조예가 깊어 많은 모사작품을 남겼다. 모사작품으로는 진찬의도(進饌儀圖) 1폭을 비롯하여 산수도 등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