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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관 / 자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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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직물에 색실로 수놓는 일을 맡아 하던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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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견직물에 색실로 수놓는 일을 맡아 하던 장인.
내용

1984년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일의 성질이 바느질과 밀접하여 여성의 전문영역에 속하였다. 능(綾) · 나(羅) · 견(絹) 등 고급 비단류의 바탕을 사용하는 자수 일은 조선 말기 이후에 수요층이 저변화되기 전까지는 주로 관청수공업체인 경공장 소속으로서 관수품 제작을 담당하였다.

자수의 역사는 직조기술의 발달과 함께 할 것으로 여겨지나 기록상으로는 삼국시대부터 확인된다. 고구려의 동맹(東盟) 때에 의복에 금수(錦繡)를 놓아 장식하였으며, 신라 진덕여왕 때 비단에 수를 놓아 당나라에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또 340년경에 백제에서 일본에 자수장인 봉채녀(縫采女)를 보내어 자수기술을 전파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고구려의 화공 가서일(加西溢)이 제작에 참여하였다는 일본의 천수국만다라수장(天壽國曼茶羅繡帳)과 함께 고대 우리나라의 자수 기술을 짐작하게 하는 자료이다. 고려시대는 재력 있는 일반백성의 의복에까지 자수장식이 성행하여 수 차례에 걸쳐 금제조처가 내리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수요층이 더욱 확산되어 궁수(宮繡)와 민수(民繡)로 대별되는 계층간의 뚜렷한 특징을 보이면서 발전하였다. 궁중에서는 공조서(供造署)에 소속된 자수장과 수방상궁에 의하여 정형화된 수본을 바탕으로 궁중 특유의 격조 높은 자수가 제작되었다.

경공장에 소속된 자수관련 장인은 화아장(花兒匠) · 금사장(金絲匠) · 재금장(裁金匠) · 침선장(針線匠) 등이 있었으며, 이들이 상호 협업을 통하여 제작활동을 전개하였다. 민간에서는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베갯모 · 방석 · 수저집 등 일상 기명에까지 폭넓게 적용되면서 생활의 일부로 정착되었다.

자수에 쓰이는 색실은 푼사를 합사하는 방법에 따라 평사(平絲) · 합사(合絲) · 연사(撚絲)로 나뉜다. 화학염료가 일반화되기 이전에는 황색 · 다색 · 홍색 · 연지색 · 녹색 · 감색 · 자색 · 흑색 등을 기조로 한 자연염료로 염색하였기 때문에 부드러운 간색의 배색이 특징이다. 제작기법은 가장자리를 선묘(線描)하는 이음수, 사선으로 메워 가는 평수(平繡) 등이 있다.

그 변형으로서의 가름수, 일정한 거리를 두고 걸러가며 놓는 자리수, 입체감을 내는 속수 등이 문양에 따라 달리 쓰인다. 개화기 이후 전승수공예 분야가 전반적으로 쇠퇴되는 여건 속에서도 자수는 예외적인 발전을 지속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적 취향에 힘입어 크게 성행하기도 하였다. 1984년 10월 15일 한상수(韓尙洙)가 기능보유자로 지정된 후 2016년 5월 9일 해제되었다. 1996년 12월 10일 최유현(崔維賢)이 기능보유자로 새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한국의 자수(刺繡)』(허동화, 삼성출판사, 1978)
『한수문화(韓繡文化)』(이학, 한국자수문화협의회,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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