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231년(고종 18) 고려에 침입한 몽골군에 대항하여 자주성(慈州城)에서 벌인 전투.
역사적 배경
경과와 결과
당시 고려는 안북부전투에서 정규군과 초적(草賊)으로 구성된 삼군이 몽골군 본진에 패배하자 몽골군 원수 사르타이와 강화를 체결할 수밖에 없었는데, 몽골과 화친을 꾀하던 최우는 내시낭중 송국첨(宋國瞻)을 보내 항복을 권유하였다. 그러나 최춘명이 이에 응하지 않으므로 사르타이는 고려 종실인 회안공 왕정(淮安公 王侹)에게 독촉하였다. 회안공은 대집성(大集成)을 보내 항복하라고 하였으나 그래도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군사력이 우위에 있던 고려 관군이 성에 들어가자 이들에게 활을 쏘아 달아나게 하는 등 성을 굳게 지켰다.
이에 최우를 비롯한 조정의 권신들은 몽골의 추궁을 당하고 한편으로는 몽골과의 화친이 성사되지 않을까 두려워한 나머지 최춘명을 죽이기로 결정하고, 내시 이백전(李白全)을 보내 최춘명을 참형에 처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 상황을 보고 있던 사르타이 휘하 몽골의 관인이 그의 충절을 가상히 여겨 만류함으로써 참형을 면하였다 한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고려대몽항쟁사연구』(윤용혁, 일지사, 1991)
- 『대몽항쟁사』(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8)
- 「대몽항쟁기 민의 동향」(신안식,『역사와 현실』7, 1992)
- 「몽골의 침입에 대한 항쟁」(강진철,『한국사』7, 국사편찬위원회,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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