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고여 피살사건 ( )

고려시대사
사건
1225년(고종 12), 고려에 왔던 몽골의 사신인 저고여(著古與)가 본국으로 돌아가던 도중에 살해당한 사건.
사건/전쟁
발발 시기
1225년(고종 12)
종결 시기
1225년(고종 12)
발발 장소
압록강 강가
관련 국가
금|동진
관련 인물
저고여(著古與)
내용 요약

저고여 피살사건은 1225년(고종 12)에 고려에 왔던 몽골의 사신인 저고여(著古與)가 본국으로 돌아가던 도중에 살해당한 사건이다. 1218년(고종 5)에 강동성(江東城)에서 고려와 몽골이 첫 번째로 접촉한 이후, 몽골은 고려에 과중한 공물을 요구하며 계속해서 압박을 가하였다. 이는 몽골이 고려를 침략하기 위한 명분을 쌓아가는 것이었고, 종국에는 이 사건이 몽골의 침략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고려와 몽골의 국교가 단절된 뒤 1231년(고종 18)에 마침내 전쟁이 일어났다.

정의
1225년(고종 12), 고려에 왔던 몽골의 사신인 저고여(著古與)가 본국으로 돌아가던 도중에 살해당한 사건.
배경 및 발단

1219년(고종 6), 주7의 전쟁이 끝난 뒤 몽골고려에 대해 해마다 주5을 거쳐 사절을 파견하여 과중한 공물(貢物)을 요구해 왔다. 특히, 몽골 사신 저고여(著古與)는 1221년(고종 8)과 1224년(고종 11) 두 차례에 걸쳐 고려에 파견되어 무례한 행동을 하면서 공물을 요구하였다.

한편, 몽골에 굴복했던 동진국의 만노(萬奴)는 서역(西域)으로 원정을 나선 칭기즈 주3의 소식이 막연한 것을 좋은 기회로 삼아 몽골과 국교를 단절하였다. 그후 만노는 1224년 정월에 고려로 사신을 보내서 이 사실을 알림과 동시에 각기 주4을 설치하여 무역을 하자고 요청해 왔다. 이에 고려는 몽골을 배반한 만노를 가까이할 수도 없고 멀리하기도 어려운 난처한 처지가 되었다. 그 때문에 고려는 일단 몽골과 동진국 두 나라와 교류를 계속하면서 정세를 관망하기로 하였다.

경과 및 결과

1224년 11월에 공물을 요구하러 온 저고여가 1225년(고종 12) 정월에 평안북도 의주(義州)의 함신진(咸新鎭)을 거쳐 본국으로 돌아가던 도중에 압록강 강가에서 살해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고려는 매우 중대한 외교적 위기에 부닥쳤다.

이는 횡포한 몽골 사신에게 분노한 고려인의 소행일 수도 있지만, 고려와 몽골의 외교적 분쟁을 희망하는 주6나 동진국의 음모일 수도 있었다. 이들은 고려와 몽골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해 그들이 고려 영토를 침범할 때도 몽골인의 복장을 하여 몽골의 소행인 것처럼 가장하였기 때문이다. 또, 몽골 사신이 고려에 들어올 때는 통로를 가로막으면서 고려인의 복장으로 종종 습격을 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고려에서는 저고여 피살사건을 금나라 도둑의 소행이라고 하며 이 사실을 몽골에 통보하였다. 그러나 몽골은 고려와 국교를 단절하였으며, 후일 이 사건을 고려를 침략하기 위한 구실로 삼았다.

의의 및 평가

저고여 피살사건은 고려와 몽골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몽골이 동아시아를 제압하기 위해 미리 계획한 군사 행동을 단행하고자 하는 목적이 숨어 있었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원사(元史)』

단행본

윤용혁, 『고려대몽항쟁사연구』(일지사, 1991)

논문

고명수, 「13세기 초 요동의 정세변동과 고려-동진 관계」(『한국중세사연구』 50, 한국중세사학회, 2017)
최윤정, 「몽골의 요동·고려 경략 재검토(1211~1259)」(『역사학보』 209, 역사학회, 2011)
주석
주3

몽골 제국의 제1대 왕(1167?~1227). 본명은 테무친. 한자식 이름은 성길사한(成吉思汗). 몽골족을 통일하고 이 칭호를 받아 몽골 제국의 칸이 되었다. 중앙아시아를 평정하는 한편, 서양 정벌로 동서양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재위 기간은 1206~1227년이다. 우리말샘

주4

고려 시대에, 지금의 의주와 정평에 두고 거란ㆍ여진과 무역하던 장. 우리말샘

주5

금나라의 요동 선무사(遼東宣撫使) 포선만노가 간도(間島) 지방에 세운 대진(大眞)이 두만강 유역으로 쫓겨오면서 불리게 된 이름. 19년 만에 몽고의 세력에 밀려 멸망하였다. 우리말샘

주6

여진족 완안부의 추장 아구다가 지금의 만주, 몽골, 화베이(華北) 땅에 북송과 요를 무찌르고 1115년에 세운 나라. 1234년 9대 120년 만에 몽고 제국에 망하였다. 우리말샘

주7

고려 시대에, 평양 동쪽, 지금의 강동에 있던 성(城). 고종 6년(1219)에 고려, 몽고, 동진의 연합군이 거란의 침략군을 무찌른 곳으로 유명하다. 우리말샘

집필자
신안식(가톨릭대학교 연구교수, 고려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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