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치도는 만석동 해안에서 동북쪽으로 4.8㎞ 지점에 있으며 서쪽으로는 영종도(永宗島)와 이웃하고 있다. 동경 126°35′, 북위 37°30′에 위치하며, 면적 0.072㎢, 해안선길이 1.2㎞이다.
물치도는 조선시대에는 강화해협의 거센 조류를 치받는 섬이라고 해서 물치도(勿淄島)라 불렸다. 1893년 편찬된 ‘청구도’를 비롯하여 ‘대동지지’, ‘대동여지도’, ‘동지도’, ‘경기고지도첩’ 등에는 물치도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1919년에 제작된 지도에는 작약도라는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는 일본인 화가가 섬을 사들인 후에 이 섬의 형태가 마치 ‘작약꽃 봉우리 모양이 생겼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1871년(고종 8) 신미양요 당시 미국 군함 5척이 이 섬 앞에서 정박한 뒤 강화도해협의 손돌목[孫乭項]을 지나 광성진(廣城津) 전투에 참가하였다. 이 때 미군은 이 섬을 우디아일랜드(Woody Island, 木島)라 칭하였다.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 함대의 이름을 따서 보아제(Boisee)라 불리기도 하였다.
물치도의 최고점은 57m이고 남해안지역에는 해식애(海蝕崖)와 함께 그 전면에 사장(砂場)이 펼쳐져 있어 해수욕장으로 이용된다. 섬 전체가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고 식생은 소나무류와 잡종림이지만 해송이 양호한 상태이다. 1월의 평균기온은 ·4℃, 8월의 평균기온은 25.1℃, 연강수량은 1,092㎜이다.
물치도는 조선시대에는 영종진(永宗鎭)에 속하였고 일제시대에는 일본인 스스기 소유였다. 1963년경기도 부천군에서 인천시로 편입되었다. 1965년에 독립산업이라는 업체가 작약도의 주인이되었고, 1978년정태수씨가 소유권을 넘겨받았다. 1993년유복수씨가 개인 명의로 사들였지만 2005년 부도를 맞았고, 경매에 의해 진성토건이 낙찰을 받았다. 1975년 유원지로 결정 · 고시된 후 개인 소유주와 인천시간의 분쟁으로 30여 년 동안 개발이 지연되어왔다.
겨울철에는 이곳에 사람이 거주하지 않으나 여름 한철에는 송도(松島) · 팔미도(八尾島)와 더불어 경인지방의 피서객이 몰려 일시적인 취락이 형성된다. 숙박시설은 현재 운영하지 않으며 수리 계획 중이다.
물치도는 약 30여 년 전부터 관광지로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1993년에는 서해해상관광에서 인수하여 유원지로 개발하기도 하였다. 서해안고속도 건설과 영종도를 개발 때문에 전보다 관광객 수가 적어진 작약도는 소유주의 부도로 인해, 2005년 경매에 들어갔고 진성토건이 낙찰을 받았다.
2005년인천시는 대부분 사유지인 작약도를 매입하여, 월미도와 연계한 종합 해양레저단지로 개발키로 했다고 밝혔다. 인천 지역 전문 건설업체인 진성토건에 의해 레저단지로의 개발이 추진 중이다.
해안에는 방조제(防潮堤)와 함께 선착장이 설치되어 있어 피서객을 실어 나를 수 있다. 물치도에 오기 위해서는 인천월미도 선착장에서 배를 타면 되고, 20분이면 도착한다. 2013년 이용객이 감소하여 여객선 운항을 중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