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884년(고종 21)에 설립된 관영 양잠회사.
개설
내용
메르텐스는 잠상공사 경리직(經理職)을 맡아 회사를 경영했는데, 이 때 그에게 지불된 봉급은 신금(薪金) 300원(元)이었다. 잠상공사는 상해에서 100만 그루의 뽕나무를 수입하여 인천·부평·서울에 심었다.
인천의 뽕나무밭은 그 곳 농민의 시기전(時起田)과 시장(柴場)을 사들인 것이며, 특히 서울의 뽕나무밭은 왕이 구궁(舊宮)의 정원을 할애하여 마련하였다. 왕실의 이와 같은 관심 속에서 정부는 뽕나무 재배비용 3만원, 메르텐스 봉급 2만 원 등 모두 5만 원을 잠상공사에 투자하였다.
한편, 메르텐스도 잠상공사 운영자금을 투자하였으며, 그 액수는 수천 달러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투자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투자한 것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1889년 문을 닫았다.
한편, 잠상공사 설립계획은 수립되었으나 실행되지는 못하였으며, 이 때 설립된 것은 잠상공사가 아니라 메르텐스 개인이 경영했던 종상소(種桑所)라는 설도 있다. 이 설에 의하면, 앞에 서술한 잠상공사의 사업 내용도 실은 종상소의 사업 내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설에서도 종상소의 설립 경영에는 정부의 지원이 있었다고 주장되고 있으므로, 기존의 설과 뚜렷한 차이는 설립 주체가 정부가 아닌 메르텐스 개인이라는 것이다.
참고문헌
- 『통리기무아문일기(統理機務衙門日記)』
- 『구한국외교문서(舊韓國外交文書)』 15-덕안(德案) 1-(고려대학교아세아문제연구소, 1966)
- 「한말고빙구미인종감(韓末顧聘歐美人綜鑑)」(이원순, 『한국문화(韓國文化)』 10, 1989)
- 「목인덕수기(穆麟德手記)」〔목인덕부인(穆麟德夫人) 편, 고병익 역, 『진단학보(震檀學報)』 24, 1963〕
- 「朝鮮開港後1880年代における生絲輸出の試みについて」-內衛門布示と蠶桑公司-(須川英德, 『朝鮮史硏究會論文集』 26,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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