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출생했다. 1932년 교토(京都)제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36년 도쿄(東京)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재학 중이던 1935년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했다. 1938년 5월 경성지방법원 판사, 1941년 경성복심법원 판사에 임명되어 해방될 때까지 근무했다.
해방 후 1945년 미군정에서 경성지방재판소 수석판사, 1948년 서울지방법원장, 1949년 내무부차관, 1950년에 국방부차관, 1953년 한일회담 대표를 지냈다. 1954년 제3대 민의원 선거, 1958년 제4대 민의원 선거에 자유당 소속으로 경기도 부천에서 당선했다. 1957년에 내무부장관을 지냈고 1959년에는 자유당 정책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1960년 5월 3·15부정선거와 관련하여 체포되었다가 풀려나 일본으로 밀항했다. 1974년 브라질로 이민 갔다가 1977년에 귀국했다. 1978년 7월 25일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