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쟁이 (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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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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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남의 신수를 점쳐주고 돈을 받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직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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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남의 신수를 점쳐주고 돈을 받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직업인.
내용

점쟁이는 무당에서 분화되었다. 무당은 몸에 신이 내려 인간의 소원을 듣고 또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해주는 능력을 지닌 반신반인(半神半人)으로, 제의를 주재하고 질병을 고치며 미래를 예언하는 일을 맡아 했다.

이 때문에 고대에는 전문적인 점쟁이가 따로 없었다. 그런데 부족국가가 성립되면서 왕과 국가의 길흉 및 운명을 예언하는 무당을 두기 시작했다.

이를 고구려에서는 사무(師巫), 신라에서는 일관(日官), 백제에서는 일자(日者)라고 불렀다. 특히 신라는 이들을 관장하는 기관으로 관상감(觀象監)까지 두었는데, 이러한 과정을 거쳐 무당에서 전문적인 점쟁이가 파생되었다.

이들은 동물의 변태와 식물의 변형으로 미래를 점치는 점복(占卜)도 했지만, 주로 천재지변으로 미래를 점치는 점후(占候)를 하는 등, 천문을 관찰하는 천문자(天文者)와 미래를 점치는 예언자의 직능을 함께 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예언자보다는 천문자로서 직능이 발달하여 신라 말기에는 이들을 천문박사(天文博士)라 부르게 되었다.

이런 약화된 예언자의 직능을 대신하기 위해 중국에서 발달한 거북의 등이나 짐승의 뼈로 점을 치거나 역수(易數:주역의 원리로 점치는 법)의 산목(算木)을 가지고 점서(占筮:점 치는 일)하여 미래를 예언하는 봉공복사(奉供卜師)를 따로 두게 되었다.

따라서 민간에도 중국의 점서로 점을 치는 직업적인 점쟁이가 등장하게 되었으며, 한편으로 전문으로 하는 무당에서 예언을 전문으로 하는 강신무의 일종인 명두(明斗, 明圖)가 파생되기도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신라의 제도를 따라 천문을 전담하는 태사국(太史局)과 점복을 전담하는 태복감(太卜監)을 따로 두었으며 태복감에는 복박사(卜博士)와 복정(卜正)이라는 관직을 두었다.

태복감은 사천대(司天臺)·사천감(司天監)·관후서(觀候署)로 이름이 바뀌다가 고려 말기에는 서운관(書雲觀)이라 불렸으나, 광종 이후 과거제도를 실시하면서부터는 복박사나 복정을 민간의 점쟁이 중에서 선발하여 임명, 승진시켰다.

또한 고려시대에는 판수는 점을 쳤다. 이 판수들은 조선시대에 와서 고려의 서운관을 관상감이라 하고 점복을 담당하는 음양과(陰陽科)를 두었을 때 관수를 명과맹(命課盲)으로 임명하고, 관직을 참봉(參奉)과 봉사(奉事)라 하니, 후대에 이를 높여 참봉 또는 봉사라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이 판수가 다른 점쟁이보다 용하는 소문이 중국에까지 알려졌는데, 그 중 홍계관(洪繼寬)·유은태(劉殷泰)·함순명(咸順命) 등이 유명하였다고 한다.

이렇듯 우리 나라의 직업적인 점쟁이는 관청의 관리로서 삼국시대 사무·일관·일자에서 출발하여 신라 관상감의 봉공·복사, 고려 태복감의 복박사·복정, 조선 관상감의 명과맹이 있었다.

민간의 점쟁이는 무당에서 파생된 전문적인 예언자 명두와 중국의 영향으로 등장한 눈이 밝은 점바치 그리고 눈이 어두운 판수의 세 계통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명두나 판수는 수가 줄어들고 점쟁이의 대부분은 점바치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직업적인 점쟁이 이외에 무당이나 그 밖의 사람들이 부업으로 점을 치고 있다.

옛날 판수들은 골목을 돌아다니며 “문복(問卜)이요!” 하고 외치면서 손님을 찾아다녔고, 명두나 점바치는 자기 집에 ‘점’ 또는 ‘점집’이라는 깃발을 달아놓고 손님을 기다렸다.

그런데 지금의 점쟁이는 거의가 자기 집보다는 여관이나 여인숙 등에 ‘운명감정소’·‘동양철학관’·‘역리연구원’이라는 간판을 걸어놓고 영업을 하며 손님의 주문에 따라 점을 쳐주고 복채를 받아 생활한다.

점쟁이가 치는 점의 종류는 여러 가지이다. 평생의 운명을 점치는 사주점, 몇 년 간의 앞일을 점치는 운수점, 당년의 길흉을 점치는 신수점, 며칠 간의 재수를 점치는 단시점(斷時占), 액운의 퇴치법을 점치는 멸액점(滅厄占), 질병의 치료방법을 점치는 절초점(折草占)이 있다.

또한, 재판의 승패를 점치는 관송점(官訟占), 길일을 점치는 택일점, 합격·당선·승진을 점치는 관운점(官運占), 잃어버린 물건의 행방을 점치는 실물점(失物占), 사람의 생사를 점치는 구심점(救尋占), 그리고 결혼의 행복을 점치는 궁합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점을 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점쟁이가 강신하여 공수(무당이 죽은 사람의 넋이 하는 말이라고 전해주는 말)로 미래를 예언하는 신점(神占)과 주문을 외워 신의 뜻을 물건에 나타나게 하여 그 형상으로 점을 치는 영점(靈占), 그리고 점책을 가지고 풀어서 점을 치는 역점(易占)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신점은 주로 명두가 하는 방법이고, 영점은 주로 여자 점바치가 하는 방법으로 쌀을 던져 점치는 쌀점, 돈을 던져 점치는 돈점, 새가 물어온 점괘로 점치는 새점, 그리고 판수가 산통의 점괘를 뽑아 점치는 산통점이 여기에 속한다.

역점은 일반적으로 남자 점바치가 하는 것으로, 음양으로 풀어 점치는 음양점, 오행으로 풀어 점치는 오행점, 육효(六爻)로 풀어 점치는 육효점, 팔괘(八卦)로 풀어 점치는 팔괘점, 구궁(九宮)으로 풀어 점치는 구궁점 등이 있다.

역점에 사용되는 점책은 ≪역경 易經≫을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한문본과 한글본이 있으나, 특히 글씨를 모르는 사람을 위하여 만든 그림책도 있는데, 이를 흔히 당사주(唐四柱)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중국에서 유래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 밖에도 신체의 특성으로 점을 치는 인체점(人體占)에는 머리통으로 점치는 두상(頭相), 얼굴을 보고 점치는 안상(顔相), 손금을 보고 점치는 수상(手相), 뱃살을 보고 점치는 복상(腹相) 등이 있지만, 통칭 관상(觀相)이라 하며 엄격한 의미에서 점복과는 구별하고 있다.

그런데 점쟁이들은 점을 칠 때 손님의 미래를 점치기 전에 거의 과거를 맞혀 자기의 점을 믿도록 한다. 또 손님에게 반말하는 것이 통례인데, 이것은 고대에 예언자가 갖고 있던 권위를 지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판수고(攷)」(김영진, 『민속어문논총』, 계명대학교출판부, 1983)
『朝鮮の占卜と豫言』(村山智順, 朝鮮總督府, 1933)
「점복(占卜)과 주술(呪術)」(박계홍, 『한국민속대관』 3,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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