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후기 상장군, 참지정사, 평장사 등을 역임한 관리.
생애 및 활동사항
1211년(희종 7) 상장군이었던 정방보는 최충헌을 살해하려 모의한 사건에 관련된 사약(司鑰) 정윤시(鄭允時) 및 환관들을 국문하여 내시낭중(內侍郎中) 왕준명(王準明) 등 주모자를 색출하였다. 1215년(고종 2) 추밀원부사로 있을 때 최충헌이 별제(別第)로 이사하자, 첨서추밀원사(簽書樞密院使) 금의(琴儀)와 함께 최충헌을 호종하였다.
거란이 침입하자 1217년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로서 정숙첨(鄭叔瞻) 대신에 원수가 되어 개경을 방어하였고, 조충(趙冲)과 함께 염주(鹽州)에서 적을 퇴각시켰다. 이듬해 안주(安州: 황해도 재령)에 있는 적을 공격하기 위하여 진군하였으나 태조탄(太祖灘: 평안북도 박천)에서 크게 패하여 어사대의 탄핵으로 파면되었다.
1220년 평장사에 이르렀으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최우에 의해 안동부사로 좌천되었다. 이후 참지정사(參知政事)로 치사(致仕)하였으며 1226년(고종 13) 죽었다.
사후에 고종이 정방보의 시호를 양평공(襄平公)이라 추증하였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정방보묘지명(鄭邦輔墓誌銘)」
- 「최충헌정권과 무인」(김당택, 『두계이병도박사구순기념 한국사학논총』, 지식산업사, 1987;『고려의 무인정권』, 국학자료원, 1999)
- 「고려묘지 사례 검토」(장동익, 『대구사학』19,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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