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0년(현종 1) 거란 성종(聖宗)이 40만 대군으로 고려를 침입하여 흥화진(興化鎭: 지금의 평안북도 의주)을 포위하자, 진사 호부낭중(鎭使戶部郎中)으로서 도순검사인 형부낭중 양규(楊規), 부사 장작주부(副使將作注簿) 이수화(李守和) 등과 함께 굳게 지켜 적의 포위를 풀게 하였다. 흥화진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힌 거란은 군대를 풀고 20만 명은 인주(麟州)에, 나머지 20만 명은 통주(通州)로 남진하였다. 이후 개경으로 진출한 거란은 흥화진을 빼앗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퇴로가 차단될 것을 우려하기도 하였다. 이듬해 흥화진사(興化鎭使)로 압록강을 건너 철수하는 적을 후면에서 공격하여 적을 크게 무찔렀는데 물에 빠져 죽은 자들이 매우 많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