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호는 홍문(弘文)이며, 초계정씨(草溪鄭氏)의 시조이다.
1017년(현종 8) 3월에 지공거(知貢擧) 곽원(郭元)의 문하에서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1035년(정종 1) 좌습유 지제고(左拾遺知制誥)를 역임하고, 1047년(문종 1)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로서 지공거가 되어 김정신(金鼎新) 등 진사를 선발하였다. 이후 예부상서 중추사(禮部尙書中樞使)에까지 이르렀다.
문종대에 일찍이 사숙(私塾)을 열어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예부시(禮部試)에 응시하려는 자들이 소속되어 공부하던 곳으로, 이곳을 홍문공도(弘文公徒) 또는 웅천도(熊川徒)라 불렀다. 당시 최충(崔沖)의 문헌공도(文獻公徒)에서 비롯된 사학십이도(私學十二徒) 중의 하나였다.
정배걸이 별세한 뒤, 문종은 1080년(문종 34)에 정배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조서를 내려 홍문광학추성찬화공신 개부의동삼사 수태위 문하시중 상주국 광유후(弘文廣學推誠贊化功臣開府儀同三司守太尉門下侍中上柱國光儒侯)를 추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