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속편』은 원(元)나라 일암왕(逸庵王)의 저술로서 14세기 중엽 중국 송강부(松江府)에서 왕지화(王至和)가 서문을 붙여 간행하였다. 이 책은 풍습을 바로잡기 위하여 효부모(孝父母)·우형제(友兄弟)·화실가(和室家)·훈자손(訓子孫)·목종족(睦宗族)·후친의(厚親誼)·휼인리(恤?里)·신교우(愼交友)·대간복(待幹僕)·근상제(謹喪祭)·중분묘(重墳墓)·원음사(遠淫祀)·무본업(務本業)·수전조(收田租)·숭검박(崇儉朴)·징분노(懲忿怒)·진기황(賑飢荒)·적음덕(積陰德) 등 18조목에 걸쳐 설명되어 있다.
당시 경상도관찰사였던 김안국은 이 책을 『여씨향약 呂氏鄕約』과 함께 경상도에서 원문에 차자(借字)로 구결(口訣)을 달고 번역 및 간행하였다.
1권 1책. 목판본. 1518년본으로 추정되는 목판본은 계명대학교 이원주(李源周)가 소장하고 있다.
이원주소장본은 방점, ㅿ 등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존경각본(尊經閣本) 『여씨향약언해』와 같이 16세기 자료로 간주된다. 현재 널리 유포되어 있는 판본은 1행 16자본과 21자본 등이 있으나, 이들은 17, 18세기경에 나온 복각본 내지 중간본이다.
일사문고본(一侶文庫本)에는 1행 16자본과 21자본이 있다. 16자본은 1792년 평안도에서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규장각본은 21자본인데 17세기 후반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유탁일(柳鐸一)소장본도 21자본이다. 일사본의 16자본은 51장인데 다른 본들은 28∼33장으로 되어 있다. 표기·음운상으로 보아 16자본만이 18세기 판본이 아닌가 추측된다.
1984년 홍문각(弘文閣)에서 이원주본과 규장각본·일사문고본을 합쳐 영인하였다.
각 판본의 국어학적 특징을 살펴보면, 먼저 이원주소장본에는 방점이 있고 ‘ㅿ’도 쓰이고 있으나, 일부에서는 ‘어버이, 여름지이’처럼 ‘ㅿ’이 ‘ㅇ’으로 나타난 예도 보인다. 그리고 ‘덕분늘, 벋디, 일를, 겨집븐’ 등과 같이 중철표기가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으며, ‘ㆍ’가 비어두음절에서 ‘ㅡ’로 변화하고 있고,(‘사름’) 어두 된소리에 ‘ㅲ’표기가 보인다.
규장각도서 소장본에서는 어두 된소리에 ‘ㅳ, ㅶ, ㅄ, ㅲ, ㅼ, ㅺ’ 등이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는데 ‘ㅴ’이나 ‘ㅲ’도 보인다. ‘ㅿ’도 역시 찾아볼 수 있지만, 이원주소장본과 마찬가지로 ‘ㅿ’이 ‘ㅇ’으로 나타난 예가 역시 존재하며, ‘처엄믜, 겨집븐’ 등과 같이 중철표기도 나타난다.
종성의 ‘ㅅ’과 ‘ㄷ’은 약간 혼란된 상태로 나타나, ‘둗거든, 둣거든’처럼 ‘ㄷ’이 표기된 예와 ‘ㅅ’이 표기된 예가 공존한다.
자음동화의 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벼슬 로픈 집의셔ᄂᆞᆫ’와 같은 예도 보이고 구개음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쳐내시니, 형졔’ 등도 나타난다.
모음과 모음 사이에서는 ‘글노셔’처럼 ‘ㄹ-ㄹ’이 ‘ㄹ-ㄴ’으로 표기된 예나, ‘갑프려’, ‘급피’와 같은 예도 찾아볼 수 있다.
제1음절의 ‘ㆍ’는 그대로 유지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2음절의 경우는 상황이 달라 ‘사ᄅᆞᆷ’의 형태가 ‘사름’으로도 표기된 것도 있다.
모음과 관련된 표기로는 ‘어엿비∼에엿비, 곡셕글∼곡식글, 벼볘, 불휘불회, 거우루~거우로’ 등이 있다.
이 밖에 축약(縮約)의 성격을 띠는 ‘이신훼아’, ‘되리져그니라’가 나타나고, ‘집’과 합성이 되면 ‘짓’으로 교체되어 ‘제짓울흔’처럼 된다.
비교를 나타내는 후치사 ‘-라와’도 ‘전년 셜우미라와 더으니’와 같이 쓰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근대국어의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지만, 지방판의 성격이 있기 때문에 주의해서 다루어야 한다. 또한 이 문헌이 얼마나 방언의 영향을 받았는지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그 저본(底本)이 경상도의 것이라는 점에서 방언적 영향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