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고려후기 밀직부사, 지밀직사사, 서북면도안무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공민왕폐위사건(덕흥군옹립사건)
  • 본관미상
  • 사망 연도1364년(공민왕 13)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병마판관|밀직부사|지밀직사사|서북면도안무사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정학수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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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후기 밀직부사, 지밀직사사, 서북면도안무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성품이 관후하고 도량이 넓었으며 무예가 있었다. 1354년(공민왕 3) 병마판관(兵馬判官)으로 이방실(李芳實)과 함께 인주(麟州: 평안북도 의주지역)에 침입한 홍건적을 물리쳤다. 1362년 밀직부사(密直副使)가 되었다가 이듬해 이인복(李仁復)과 함께 공민왕의 흥왕사 행궁에 침입하였던 김용(金鏞)의 잔당들을 순군(巡軍)에서 국문하였다.

그 해 공민왕의 반원정책에 불만을 품은 원나라가 공민왕을 폐위시키고 덕흥군(德興君)을 고려왕으로 세워, 최유(崔濡)를 앞세워 고려에 침입하려 하였다. 이 때 공민왕의 반원정책을 지지하였던 정찬은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로서 서북면도안무사(西北面都按撫使)가 되어 한휘(韓暉)와 함께 원나라의 침입에 대비한 병영을 내왕하며 군사의 동정을 살피는 일을 맡았다.

1364년 최유를 앞세운 원나라 군대를 물리친 뒤 휘하의 병마사 목충(睦忠)이 재상 목인길(睦仁吉)의 세력을 믿고 정찬을 시기한 나머지 덕흥군과 밀통한다고 무고하여 투옥되었다. 조정에서 정찬을 순군옥에 가두고 목충과 대질하였으나 누명을 벗지 못하자 그 해 2월에 울분으로 옥중에서 병사하였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 「공민왕 폐립과 문익점의 사행」(김형수, 『한국중세사연구』19, 2005)

  • - 「고려 공민왕의 반원적 개혁정치에 대한 일고찰: 배경과 발단」(민현구, 『진단학보』68,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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