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충신 장군 유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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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조선 중기의 장군 정충신(鄭忠信)의 유물.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정충신장군 유품(鄭忠信將軍 遺品)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국가민속문화재(1978년 06월 21일 지정)
소재지
충청남도 서산시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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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의 장군 정충신(鄭忠信)의 유물.
내용

1978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갑옷 · 사명기 · 영정 · 향로 · 향합 등이 있다. 갑옷 1착은 1630년(인조 8) 5월 1일 수군부원수로서 가도(가島)의 병란을 토벌하고자 출정할 때 인조가 궁시 및 검과 더불어 하사한 것으로 추측된다.

겉감은 황색 운보단, 안감은 저황색 운문단을 이용하여 만든 두정갑이다. 속에는 쇠로 만든 미늘 대신 가죽을 2.2㎝ 간격으로 호아서 누빈 무명 세겹이 들어 있다. 옆에는 무를 달고 앞에는 섭을 댄 것이 두루마기와 흡사하여 매우 활동적이다.

총 길이 114㎝, 화장 46.5㎝로, 앞은 매듭단추 세 개로 여미게 되어 있고 목둘레는 U자형으로 둥글게 팠으며, 앞중심에는 넓은 무를 대었다.

앞판에는 지름 1.8㎝의 두정을 어깨선에서 밑으로 열 한 줄 박고, 그 밑으로는 간격을 두어 아랫단까지 두 줄을 더 박았다. 뒤판은 앞판과 같게 하였으나 등솔기에 4.5㎝ 너비의 두정을 뒤트임까지 세로로 다섯 개를 더 박았다.

어깨의 좌우 견철은 길이 13.1㎝로 머리와 몸통 사이에 경첩을 달아 활동하기 편하게 하였다. 서군사명기 1매는 총 길이 138㎝, 너비 55.5㎝로서 저황색 운보단 바탕에 ‘西軍司命(서군사명)’이라고 쓰여 있다. 가장자리는 세로 16.5㎝, 가로 19㎝로 주황색 비단을 호아 붙였다.

그리고 영정 1점은 팔분 좌안상으로 호상에 가볍게 걸터앉은 자세이다. 북청색 운문단 상복(常服) 차림에 문사각(紋紗角) 사모를 쓴 모습이다. 흉배는 단각해치흉배로 주황색이며, 그 위에는 황색으로 가늘게 선이 그어져 있다.

해치 좌우에는 구름이 있고 오른쪽에는 모란이 있다. 초상에는 ‘錦南君諡忠武鄭公遺像(금남군시충무정공유상)’이라는 제첨이 묵서되어 있는데, 이로 미루어 시호가 내려진 1685년(숙종 11) 8월 11일 이후에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그밖에 향로 1개는 좌우에 손잡이가 달린 놋쇠향로로 주위에는 문양을 부조하였고, 다리는 삼각으로 처리하였다. 뚜껑은 반구형으로 위를 둥글려 주위를 투조하였고, 한가운데 손잡이를 조각하여 붙였다.

향합 1개도 둥그런 형태에 삼각의 다리를 하였으며, 뚜껑은 중앙이 약간 솟은 형인데, 한가운데 꼭지 손잡이가 달려 있다. 정종열(鄭鍾說)이 소장하고 있다.

참고문헌

『충무공정충신(鄭忠信)』(금성정씨(錦城鄭氏)종친회간, 1971)
『한국의 갑주』(이강칠, 한국복식학회간,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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