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월성(月城) 출신. 아들은 경주정씨 양경공파 시조인 정희계(鄭熙啓)이다.
1342년(충혜왕 복위3) 과거에 급제하였다. 1356년(공민왕 5) 고려는 원의 영토였던 압록강 서쪽의 8참(站)을 공격하였는데, 이는 공민왕의 반원개혁과 구토(舊土) 수복의지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때 정휘(鄭暉)는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가 되었으며, 1358년에는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로서 삭방도군민만호부만호(朔方道軍民萬戶府萬戶)가 되었다.
이듬해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가 되고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를 지냈다. 1361년 제2차 홍건적 침입이 있었을 때에는 동북면도지휘사(東北面都指揮使)가 되었다. 이후 홍주목사(洪州牧使), 문하평리(門下評理)를 역임하였고, 월성군(月城君)에 책봉되었다. 『목은집(牧隱集)』에 정휘에 관한 시가 여러 편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이색(李穡)과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