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풍토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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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암집 / 제주풍토록
충암집 / 제주풍토록
한문학
작품
조선 중기에 김정(金淨)이 제주의 풍토를 기록한 기행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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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김정(金淨)이 제주의 풍토를 기록한 기행록.
개설

제주도 유배생활에서 체험한 그곳의 풍토와 상황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글로, 김정의 문집인 『충암집(冲庵集)』 권4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제주풍토록」은 작자 김정이 1519년(중종 14) 11월에 일어난 기묘사화로 인하여 진도에서 제주도로 이배되었던 1520년 8월부터 사사(賜死)되던 1521년 10월까지의 생생한 체험기록으로, 『연보』를 보면 1521년 외조카로부터 제주도의 풍토와 물산(物産)에 대한 물음을 받고 답장으로 써 보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도의 기후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적거지(謫居地)인 금강사(金剛社) 옛 절터에서의 생활과 심회(心懷)를 적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구성은 크게 기후 및 지리적 환경, 풍물과 습속, 언어와 사회상, 토산물과 특산물, 유배지의 환경과 정신적 상황의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제주의 기후에 대해서는 ‘겨울에도 덥다. 바람이 세어 병들기 쉽다. 비오는 날이 많아 물기가 많다. 가옥들은 초가가 많고 새끼로 얽어매었다. 집이 깊고 침침하다.’고 적고 있다.

제주의 풍속에 대해서는 ‘이들이 귀신을 숭상하고 무당이 많다. 을 신으로 받들고 있어, 작자가 뱀을 죽여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그들은 뱀에 대한 신앙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개탄하였다.

또한, 말소리가 본토와 다르다는 것을 밝혔다. 산물로는 노루 · 사슴 · · 참새 · 전복 · 오징어가 많으며, 사기그릇과 유기는 없다고 하였다. 가장 이상한 것은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이곳에서 소금이 부족하여 진도나 해남 등지에서 무역해다가 쓰고 있는 점이라 하였다.

김정의 눈에 비친 당시 제주의 사회상은 문명의 암흑지대였다. 학문하는 이가 거의 없었다. 부정과 비리가 난무하여 정의가 외면당하였다. 약육강식의 동물적 생리가 판을 치며, 종교가 사회적 비리에 편승하는 등의 반문명의 양산지로 보인 것이다.

김정은 주1된 유배지 주변의 절망적 상황에서도 생의 의욕을 포기하지 않고 과실수를 심어보기도 하고 때로는 남몰래 한라산을 오르기도 한다고 하였다.

의의와 평가

지방의 풍토와 문화 등을 기록한 풍토기는 대개 각종의 관찬읍지에 많이 나타난다. 그 편찬의 의도는 민(民)을 지배하기 위한 치자(治者)의 편의성에서 출발하여 정치적 목적에 제공되었다. 그러나 「제주풍토록」은 이러한 성격에서 벗어나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16세기 제주지역의 풍토와 상황을 생생하게 그려낸 제주풍토지이다. 16세기 초중반 제주 지역의 풍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자료이다. 한편, 다른 기행문에서는 볼 수 없는 문장의 비장함을 맛볼 수 있어, 문학적으로도 훌륭한 수필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충암집(冲庵集)』
「충암(冲庵) 김정(金淨)의 문학세계(文學世界)」(김종진, 『성균한문학연구』15, 1985)
「충암(冲庵)의 제주풍토록소고(濟州風土錄小考)」(양순필, 『어문논집』23, 고려대학교, 1982)
주석
주1

유배된 죄인이 거처하는 집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가두어 두던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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