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은 신보(申輔)와 함께 잉신(媵臣) 자격으로 아유타국 공주인 허황옥(許黃玉)을 따라 멀리 금관국으로 왔다고 한다. 잉신이란 중국식 표현이며 고귀한 여성이 시집갈 때 함께 따라가는 사람이다. 그들의 아내 두 사람의 이름은 모정(慕貞)과 모량이며, 20여 명의 노비와 함께 공주를 시종하였는데, 그들이 가지고 온 물품으로는 온갖 고급 직물, 금은주옥(金銀珠玉)으로 만든 장신구 등 이루 기록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고 한다.
조광은 금관국에서 종점감(宗正監) 지위에 있었는데, 종정이란 표현은 중국에서 황족의 일을 관장하는 직책에 쓰였다. 이 관직명이 가야에 있었는지는 알기 어렵고 후대의 표현일 가능성이 있다. 조광은 금관국에 온 지 30년 만에 부인과의 사이에서 두 딸을 낳았고, 그 후 머지 않아 죽었다고 한다.
조광과 함께 금관국으로 온 노비들은 이 나라에 온 지 7, 8년 사이에 자식을 낳지 못하고 오직 고향을 그리워하다가 모두 죽었다고 한다. 조광의 외손녀인 호구는 마품왕의 왕비가 되어 태자 거질미(居叱彌)를 낳았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