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경제회 ()

목차
근대사
단체
1919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친일단체.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1919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친일단체.
내용

1919년 12월 박영효(朴泳孝)·최진(崔鎭)·박해달(朴海達)·장두현(張斗鉉) 등이 조선경제를 연구하여, 농업·상업·공업을 진흥하고, 동포의 생활을 개선한다는 목적을 표면에 내세우고 조직하였으며, 회장은 박영효, 부회장은 최진이었다.

운영경비는 이사원(理事員)의 월회비 및 각종 찬조금으로 충당하였으며, 강연회 등의 활동을 하였는데, 1920년 5월 20일 박영효가 ‘아회(我會)의 주지(主旨)’, 최진이 ‘조선의 경제’, 안국선(安國善)이 ‘세계경제와 조선’, 김우영(金雨英)이 ‘세계적인 번민’ 등의 연제를 내걸고 강연한 것이 그 예이다.

민족해방운동이 점차 가열하게 전개되자, 1924년 3월 유민회(維民會)·소작인상조회·국민협회·대정친목회·노동상애회 등 10여 친일단체와 함께 ‘내선(內鮮) 양민족의 융합’, ‘관민일치(官民一致)’, ‘사상선도’ 등을 강령으로 하는 매국적 친일단체의 총집결체인 각파유지연맹(各派有志聯盟)을 결성하는 등의 친일행위를 하였다.

참고문헌

『개벽(開闢)』
『한국공산주의운동사』2(김준엽·김창순, 고려대학교아세아문제연구소, 1969)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