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학생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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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5월 조선학생의 친목과 단결의 도모, 조선물산의 장려 및 지방열타파 등의 목적으로 조직되었던 학생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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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20년 5월 조선학생의 친목과 단결의 도모, 조선물산의 장려 및 지방열타파 등의 목적으로 조직되었던 학생단체.
내용

1920년 4월 18일서울을 중심으로 중등학교 이상의 남녀학생 200여 명이 중앙예배당에 모여 조선학생친목대회 발기총회를 열어 그 명칭을 조선학생대회로 고치고, 그 해 5월 9일 정동예배당에서 서울시내의 학생 및 전국 각 지방 출신의 재경학생 8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총회를 열었다.

간부진으로서 회장 김윤경(金允經), 부회장 김찬두(金瓚斗), 총무 김경순(金慶淳)·신경수(辛景壽), 의사부장(議事部長) 최정묵(崔鼎默), 덕육부장(德育部長) 이의정(李義正), 지육부장(智育部長) 정성봉(鄭聖鳳), 체육부장 박희준(朴熙俊), 경리부장 김영숙(金永淑), 사교부장 권철(權鐵) 등을 선출하였다.

이렇게 조직된 조선학생대회는 과거 지방단위 학우회 및 친목회 활동에서 보여준 분산성을 지양하고, 학생계층의 구심력을 집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전국회원의 수가 약 2만이 되었다.

이렇게 되자 일제당국은 그 세력이 지나치게 커짐을 두려워하여, 학교경영자들에게 압력을 가하여 1922년 7월 이른바 서울시내 7개중등학교 교장회의 결과, 중등학교 학생들 입회를 불허한다는 결의를 채택하도록 하였다.

이 결과, 조선학생대회로 결집되려던 학생세력의 구심력에 동요와 약화작용이 가하여져 무력하여지기 시작하자 전문학교의 뜻있는 학생이 중심이 되어 조선학생대회를 대신할 수 있는 학생조직체를 만들기 위하여 조선학생회(朝鮮學生會) 창립운동을 일으키게 되었다.

참고문헌

『항일학생민족운동사연구(抗日學生民族運動史硏究)』(정세현, 일지사, 1975)
「학생운동(學生運動)」(김호일, 『한국사』 22, 국사편찬위원회, 1978)
「일제하학생단체(日帝下學生團體)의 조직과 활동」(김호일, 『사학연구(史學硏究)』22, 1973)
집필자
김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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