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후기에 언부총랑 · 판밀직 · 첨의찬성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338년(충숙왕 7)에 원나라의 사신 실리미(失里迷)가 황후책봉의 조서를 가지고 고려에 왔을 때 왕이 이를 몸소 맞이하지 않아 문제가 되었는데, 이때 조위가 “왕이 병이 났다”고 해명하여 이를 무마하였다.
충숙왕이 심양왕 왕고(瀋陽王 王暠)와 알력이 있을 때 형인 조연(趙璉) · 조연수(趙延壽)와는 달리 심양왕을 돕지 않았다. 그러나 모함을 받아 원윤(元尹)의 직으로 있다가, 뒤에 누명이 벗겨져 1333년(충숙왕 복위 2) 지밀직(知密直)으로 특진되었다. 얼마 뒤 판밀직(判密直)으로 전보되었고, 이후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로 승진되어 평양군(平壤君)에 봉하여졌다. 1341년(충혜왕 복위 2)에 사사로이 방문객과 함께 국사(國事)를 비방하였다는 무고를 받아 복주목사(福州牧使)로 좌천되었는데, 조정의 재촉이 심하여 급히 부임하여 마침내 병을 얻었다. 1347년(충목왕 3)에 평양부원군(平壤府院君)에 진봉(進奉)된 뒤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장경(莊景)이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조위묘지명(趙瑋墓誌銘)」
- 『역주 고려묘지명집성(하)』(김용선,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2001)
- 「조인규와 그의 가문(중)」(민현구, 『진단학보』43,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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