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탐진(耽津: 지금의 전라남도 강진)이다. 바둑을 잘 두어 중랑장(中郎將)으로 있을 때 원나라 세조(世祖)의 부름을 받고 가서 원나라 명수와 대결하여 승리함으로써 명성을 얻었으며, 이에 원나라에 수시로 입국할 수 있는 허가를 얻었다.
1277년(충렬왕 3) 원나라에서 돌아와, 세조의 명으로 각 지방을 돌아다니며 백성을 징발하여 해마다 고려의 인삼을 세조에게 바쳤다. 이때 인삼이 조금이라도 썩고 상한 것이 있거나 그 지방에서 나지 않아 제때에 바치지 못하면, 곧 은(銀)이나 화폐로 징수하여 사리를 꾀하는 등 민폐를 많이 끼쳤으므로 원성이 높았다. 조윤통은 본래 고려의 인삼을 원나라에 팔았던 상인 출신으로 추정되는데, 원나라 세조에게 인삼을 바친 것은 대원무역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에 충렬왕이 장순룡(張舜龍)을 시켜 세조에게 이를 그만두도록 주청하기도 하였다. 1279년 상장군(上將軍)으로 원나라에 다녀와서 세조의 명으로 동계(東界)의 응방(鷹坊)을 관리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여러 번 원나라에 다녀와서 원의 중서성(中書省)으로부터 담선법회(談禪法會)의 복설(復設)을 허가받았다.
1283년 왕의 총신 염승익(廉承益)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 윤돈(尹敦)과 오숙부(吳叔富)를 왕에게 고하여 섬으로 유배하게 하였으며, 이 해에 호군(護軍)으로 다시 원나라에 다녀왔다. 뒤에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에 이르러 치사(致仕)하였다. 현학금(玄鶴琴)에도 능하여 별조(別調)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