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통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고려후기 상장군, 호군, 도첨의찬성사 등을 역임한 관리.
인물/전통 인물
  • 본관탐진(耽津)
  • 사망 연도1306년(충렬왕 3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중랑장|상장군|호군|도첨의찬성사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탐진(耽津)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정학수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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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후기 상장군, 호군, 도첨의찬성사 등을 역임한 관리.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탐진(耽津: 지금의 전라남도 강진)이다. 바둑을 잘 두어 중랑장(中郎將)으로 있을 때 원나라 세조(世祖)의 부름을 받고 가서 원나라 명수와 대결하여 승리함으로써 명성을 얻었으며, 이에 원나라에 수시로 입국할 수 있는 허가를 얻었다.

1277년(충렬왕 3) 원나라에서 돌아와, 세조의 명으로 각 지방을 돌아다니며 백성을 징발하여 해마다 고려의 인삼을 세조에게 바쳤다. 이때 인삼이 조금이라도 썩고 상한 것이 있거나 그 지방에서 나지 않아 제때에 바치지 못하면, 곧 은(銀)이나 화폐로 징수하여 사리를 꾀하는 등 민폐를 많이 끼쳤으므로 원성이 높았다. 조윤통은 본래 고려의 인삼을 원나라에 팔았던 상인 출신으로 추정되는데, 원나라 세조에게 인삼을 바친 것은 대원무역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에 충렬왕이 장순룡(張舜龍)을 시켜 세조에게 이를 그만두도록 주청하기도 하였다. 1279년 상장군(上將軍)으로 원나라에 다녀와서 세조의 명으로 동계(東界)의 응방(鷹坊)을 관리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여러 번 원나라에 다녀와서 원의 중서성(中書省)으로부터 담선법회(談禪法會)의 복설(復設)을 허가받았다.

1283년 왕의 총신 염승익(廉承益)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 윤돈(尹敦)과 오숙부(吳叔富)를 왕에게 고하여 섬으로 유배하게 하였으며, 이 해에 호군(護軍)으로 다시 원나라에 다녀왔다. 뒤에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에 이르러 치사(致仕)하였다. 현학금(玄鶴琴)에도 능하여 별조(別調)를 남겼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 「원간섭기 대원무역: 『노걸대』를 중심으로」(위은숙, 『지역과 역사』4, 부산경남역사연구소, 1997)

  • - 「여·원무역의 성격」(전해종, 『동양사학연구』12·13,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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