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초명은 조인여(趙藺如)이다.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지낸 조열(趙悅)의 아들이다.
일찍이 중이 되었으나 환속하여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고려를 배반하고 원나라로 도망쳐, 원나라에 가서 여러 나라 말을 해득하여 수재라 일컬어졌다. 원나라의 황제가 거처하는 곳에 출입하면서 일본을 회유하는 데 고려를 앞세울 것을 종용하였다. 그리하여 1266년(원종 7) 원나라는 국신사(國信使) 흑적(黑的)·은홍(殷弘) 등을 파견하였으며, 고려에서는 송군비(宋君斐)에게 이들을 향도하도록 하였다. 흑적 등은 거제도까지 갔다가 풍랑을 빙자하여 되돌아오는 것으로 끝났으나, 이후에도 조이는 고려를 앞장세워 일본을 정벌하도록 원나라에 권유하는 등 참훼를 일삼았다.